국산 1호 조미료 ‘미원’은 1956년 1월 31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소재 496㎡(약 150평) 남짓한 작은 공장에서 탄생했다.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라는 문패 아래 크고 작은 옹기 항아리와 5마력의 발동기 한 대가 전부였다. 이 공장에서 임대홍 창업주(89)가 30여 명의 직원과 매월 500kg의 조미료를 생산했다. 비가 올 때 장화 없인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시설이 허술하고 생산량도 적었지만 미원은 당시 국내 조미료 시장을 휘어잡고 있던 일본 ‘아지노모토’를 밀어내고 한국 음식사에 한 획을 긋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 미원에서 연매출 1조4000억 회사 이뤄내
미원으로 출발한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는 1997년 대상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대상그룹은 지주사인 대상홀딩스 아래 대상㈜, 대상FNF㈜, 대상정보기술㈜,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나드리화장품 등 자회사 5개와 대상문화재단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대상그룹의 근간인 대상㈜은 2008년 매출 9200억 원을 올린 종합식품회사다. 대상FNF㈜는 김치, 두부, 콩나물 등 신선식품을 위주로 한다. 영화계 훈남인 정우성 이정재 씨가 선전하는 ‘청정원’, 유기농 전문인 ‘청정원 오푸드’, 건강기능식품 분야의 ‘대상웰라이프’가 주력 브랜드다. 대상정보기술㈜은 시스템통합(SI)을 하는 정보기술(IT)분야 컨설팅 회사이고 ㈜상암커뮤니케이션즈는 광고회사다.
그 외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조미료 제조사 및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2008년 해외 사업 전체 매출은 약 6000억 원에 달한다. 해외 사업장을 제외한 그룹의 총매출 규모는 1조4000억 원이다.
○ ‘다시다’에 시장 뺏긴 아픔을 약으로
대상은 1964년 전분 및 전분당사업 진출, 1965년 미생물 발효법 개발, 1967년 미원 생산량 100t 초과 달성을 차례로 이뤄내면서 당시 조미료시장에서 점유율 55%를 기록하며 경쟁자였던 일미(一味), 선미소(仙味素), 미영(味榮), 미풍(味豊) 가운데 선두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1963년 ‘미풍산업’으로 조미료 사업에 진출한 삼성이 1968년 업계 2위로 도약한 데 이어 일미, 미영을 합병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미풍은 1975년 천연성분을 기반으로 한 복합조미료 ‘다시다’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당시 미원을 필두로 한 발효 조미료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아차!’ 하던 사이 미풍은 입지를 강화했고, 대상이 이에 대항해 1982년 ‘맛나’라는 복합조미료를 내놓았으나 다시다를 넘어설 수 없었다. 복합조미료 부문에서는 후발주자였기에 뼈아픈 굴욕을 겪은 것이다.
대상은 이 즈음부터 고부가가치 종합식품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87년 임대홍 창업주가 물러나고 장남인 임창욱 회장(60)이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해 6월 ‘L-라이신’(성장발육필수아미노산) 제조 공장을 준공했다. 8월에는 ‘L-페닐알라닌(저칼로리 감미료인 아스파탐의 원료)’을 산업화했다. 1988년에는 맛나에서 한 단계 발전한 복합조미료 ‘감치미’를 개발했다. 1996년에는 조미료 회사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신규브랜드인 ‘청정원’을 출범시키고 건강 종합식품회사로 거듭났다.
○ 외환위기 거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상이 겪은 가장 큰 한파는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 이전에 건설, 유통 등으로도 사업 확장을 했지만 일부 사업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 1996년 대상건설이 삼풍백화점 용지를 인수하는 데 지급보증을 한 것이 결정타였다. 대상건설은 용지를 1000억 원 이상 주고 인수했는데 외환위기로 금리가 급등하면서 대상건설뿐 아니라 대상도 함께 휘청거리게 됐다.
이때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1997년 임창욱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1998년에는 알짜였던 라이신사업 부문을 한국바스프에 매각했다. 라이신사업 매각 대금은 6억 달러로, 회사는 이 돈을 추가 구조조정을 위한 기초 자금으로 쓸 수 있었다.
구조조정은 2000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2003년 아스파탐사업 부문을 미국 뉴트라스위트에, 미니스톱 지분을 일본 미니스톱 본사에 매각했다. 2005년에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대상홀딩스를 출범시켰다.
대상그룹의 역사는 평탄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를 통해 더 단단한 회사로 거듭났다. 앞으로 대상그룹은 3대 핵심 사업인 식품사업, 바이오(식품 의약품 기초소재) 사업, 전분당사업을 중심으로 해외 수출을 강화하고 새로운 제품과 성장엔진을 구축하는 데 기업의 사활을 걸 계획이다.
임창욱 명예회장은 “혁신을 통한 가치창조로 공격적 성장을 이루어가자”는 2010년 비전을 발표했다. 박성칠 대상㈜ 사장(54)은 ‘2010년 영업이익 1000억 원 돌파’를 목표로 내세웠다. 박 사장은 “해외 사업 부문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주력 제품군도 장류와 조미료 부문에서 즉석식품, 신선식품 등 편의식 부문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