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며칠 사이 도요타와 관련해 10건이 넘는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 도요타 ‘캠리’와 ‘프리우스’를 사고 싶은데 조언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e메일을 보내온 독자에서부터 딜러를 소개해 달라는 지인들도 있었다. 도요타에 대한 자동차 소비자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1500대가 넘는 자동차가 예약됐다고 한다.
2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도요타 브랜드 발표회.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도요타 관계자들은 자동차 판매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다. 후노 유키토시(布野幸利) 도요타 본사 부사장은 기조연설의 대부분을 사회공헌에 할애했다. 그는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거나 한국 브랜드와 경쟁할 생각은 없고 서비스와 사회공헌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장사꾼이 장사할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도요타의 세계 1위는 사회공헌을 통해 얻은 결과가 아니다. 품질 및 마케팅과 함께 정치력의 산물이다. 도요타는 미국에서 GM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로비자금과 막강한 로비스트를 동원하고 있다. 친환경 자동차로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로비활동의 상당 부분은 미국 의회의 연료소비효율 향상 법안을 누그러뜨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무공해 자동차 규정에 하이브리드차를 포함시킨 것도 도요타 로비의 성과로 알려졌다.
특히 도요타는 미국 11개 주에 공장 등 대형 사업장 13개를 가지고 있어 해당 지역 주민과 정치인을 든든한 후견인으로 만들었다. 도요타는 공장 건립도 정치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도요타의 행보와 관련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로 유명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도요타의 정경유착을 비판한 글을 썼을 정도다. 비판을 받더라도 한국 자동차회사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이토록 용의주도한 도요타가 한국시장에 사회공헌을 위해 들어왔을까. 파격적인 가격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이유가 짐작된다. 주력 모델인 캠리 2.5L의 국내 가격은 3490만 원이다. 미국시장에서 현지 생산해 판매하는 동급 모델은 약 3100만 원이다. 한국의 8% 관세와 각종 자동차 관련 세금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보다 낮은 가격이다.
비슷한 등급의 현대자동차 쏘나타 2.0L 모델은 2900만 원 정도다. 캠리가 20% 정도 비싸다. 그러나 내년에 나올 쏘나타 2.4L 모델과는 15%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기량과 옵션이 비슷하고 가격이 15% 정도 차이라면 캠리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준중형차인 코롤라, 준대형차인 아발론까지 낮은 가격에 들어온다면 결국 현대차는 ‘도요타’라는 가격제한선에 걸려 국내에서 차의 가격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
최근 고급화를 추구하며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눈엣가시이지 않을까. 결국 현대차의 영업이익 악화와 연구개발 비용 축소로 이어지게 돼 장기적으로 해외 판매에도 지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도요타는 반일 감정을 걱정하기는커녕 자동차 가격 인상을 저지하고 서비스를 개선한 공로로 국내 소비자의 호응을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적중만 한다면 많이 팔지 않고도 ‘캐시 카우’의 뿔을 꺾어버리는 절묘한 전략이 아닐까. ‘도요타 효과’가 긍정적인 자극제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현대자동차가 진정한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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