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 저자 탈러 교수 방한강연 관료나 CEO의 강력한 개입 대신 은근한 권유가 똑똑한 선택 유도 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기업의 투명성 높이는 것이어야
“아이들에게 ‘학교 급식에서는 과일을 많이 먹어라’고 말하는 것은 좋죠. 하지만 음식 배열 순서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안다면? 잔소리하는 대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과일을 놓거나, 음식을 배열할 때 가장 먼저 과일을 놓으면 되겠죠. 이게 ‘넛지(Nudge)’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한국을 찾아 600여 명의 기업인을 만났다. 탈러 교수가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제2회 기업가정신 주간 국제 콘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한 것. 그는 “살짝 자극한다, 살짝 밀어준다는 뜻을 가진 ‘넛지’는 일방적인 강제, 금지 등의 조치보다 부드러운 개입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 정부의 움직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정부의 개입은 ‘넛지’가 아니다
탈러 교수는 이날 개막 강연과 기자간담회에서 “세계가 복잡해지고, 기업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고위 관료가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게 됐다”며 “관료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된다고 해서 그 기업이 더 나아지리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기업이 충분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넛지의 원칙”이라며 “정부가 ‘승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투자 회수에 장시간을 요하는 프로젝트는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며 “인터넷은 미국 정부가 주도해 발명했지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인터넷 기업을 정부가 만든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탈러 교수는 “자영업자에게 ‘본인의 사업 성공 확률’을 물어보면 절반 이상이 90% 이상이라고 대답한다”며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사람의 성공 확률’을 물어보면 이보다 낮은, 비로소 현실적인 답변이 나온다”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경영진은 자신의 회사가 항상 리스크가 낮고, 잘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라는 것. 이에 대해 “리스크를 피하는 진정한 방법은 외부와 공유하는 것”이라며 “투명성을 정부의 역할이라고 한 것은 기업이 리스크를 외부와 공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투자 증진도 ‘넛지’로
그렇다면 기업가 정신 강화, 투자 증진에서도 ‘넛지’ 방식이 유효할까. 탈러 교수는 현재 대부분의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민간 투자 및 소비 증진 문제를 ‘넛지’ 방식으로 풀 수 있다면서 그 예로 ‘녹색 투자’를 꼽았다. 그는 “최근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에너지 소비량이 공개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이 조치가 실시되면 기업은 에너지 소비량을 파악한 뒤 비효율적인 사용을 인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효율적 사용을 위한 녹색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기업가 정신과 정부 역할에 대해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성공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며 “창업에 앞서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창업한 뒤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반대하는 탈러 교수도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 강화 추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위기에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짧은 시간 안에 내려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좋고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지금 단계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보다 앞으로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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