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6일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성장률’을 발표했지만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은 그리 흥분하지 않는 분위기다. 경제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금리인상 시기도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은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정부의 말을 대체로 믿어왔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경기 회복세를 충분히 확인한 만큼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출구전략을 집행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금리인상 우려에 채권값 연중 최저
이날 금융시장은 한 가지 재료를 놓고 시장별로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증시는 성장률 발표를 일단 호재로 받아들였지만 채권시장은 금리가 연중 최고치로 상승(채권값은 하락)하는 등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6.94포인트(1.03%) 오른 1,657.11로 장을 마쳤다. 지난 주말 미국 증시는 약세를 보였지만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외국인투자가와 기관투자가가 동반 매수한 것이 강세 요인이었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달랐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성장률 지표가 발표된 아침부터 강세를 보이더니 결국 4.62%로 마감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전 거래일보다 0.04%포인트 오른 연 5.10%로 역시 연중 고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조만간 올릴 수도 있다는 우려로 채권 매도세가 갑자기 커진 탓이다. 이날 국고채(3년) 금리는 오전에 4.64%까지 치솟으며 ‘패닉’ 양상을 보였지만 정부가 출구전략에 신중한 견해를 보이고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다소 안정을 되찾았다.
삼성증권 최석원 채권분석파트장은 “(경제지표가) 이 정도 수준이 됐으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맞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 원화가치가 더 오를 것을 우려해 인상 시점을 늦출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 증시에도 장기 부담 가능성
그동안 국내 증시는 출구전략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에 따라 희비가 교차해 왔다. 한은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불거지면 증시가 출렁거렸다가 그때마다 정부가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서면 이내 진정되곤 했다. 이날도 정부는 출구전략에 대해 같은 태도를 보였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SK증권 송재혁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한국은행은 전기 대비 평균 1% 이상의 성장률이 3개 분기 이상 지속될 때 기준금리를 인상해왔다”며 “빠른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감안할 때 이르면 다음 달 금리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비록 이날 증시는 상승세로 마감했지만 결국은 높은 성장률이 증시에 악재로 돌아올 것이란 전망도 많다. 코스피가 이미 3분기까지의 회복세를 반영해왔고 4분기 이후의 성장률은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변수다.
KB투자증권 김성노 연구원은 이날 ‘국내총생산(GDP)의 역설’이란 보고서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률은 조기 금리인상으로 이어져 증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신영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올해 국내 증시의 급등엔 외국인 매수세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출구전략 실행 가능성은 외국인 편에서는 또 하나의 차익실현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