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비맥주는 맥주 출고가를 2.8~3.9% 높이면서 최근 국제 곡물과 유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는 같은 이유로 지난해 7월에도 맥주 출고가를 5.6% 올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곡물과 유류 가격 추이가 실제 제품 값을 올릴만큼 높아졌을까요. 맥주의 주 원료인 보리가 런던 석유거래소(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 추이를 살펴봤습니다.
지난달 28일 WTI는 배럴당 77.44달러. 오비맥주가 직전에 제품 가격을 올렸던 지난해 7월23일(배럴당 123.92달러)과 비교하면 6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들어 t당 99~171 캐나다 달러 범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보리 가격은 지난달 28일 t당 162 캐나다 달러로, 지난해 7월23일 t당 251.5 캐나다 달러의 55%에 그쳤죠. 결국 국제 곡물가와 유가는 오비맥주 가격 인상의 '핑계'에 불과한 셈입니다.
올해 5월 미국 사모(私募)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가 오비맥주 인수를 확정지을 당시 국내 주류 업계에서는 "사모펀드의 목적은 시세 차익이기 때문에 투자보다는 제품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KKR은 1980년대 후반 다국적 식품담배 회사인 '나비스코'를 적대적 인수합병(M&A)한 뒤 '경영권을 노리는 야만인들'이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오비맥주가 하이트맥주 보다 공격적으로 먼저 제품 가격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오비맥주 고위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우리 회사에 1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돼 맥주 값을 올린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의 하나로 남한강 유역에 있는 이 회사 경기 이천공장의 취수시설 이전을 요청했고, 이전 비용 100억 원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500mL '카스' 병맥주 출고가가 993.98원에서 1021.80원으로 올랐습니다. 27.82원, 가볍게 털어 넘기기엔 여러 가지로 씁쓸한 맥주 값 인상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