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펀드매니저 ‘철새’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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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장 대포, 드림 박, 프로이드 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0년대 말 투자신탁업계를 좌지우지했던 주식 펀드매니저 세 사람의 별명이다. 장 대포는 국민투자신탁 소속의 장인환, 드림 박은 한국투자신탁의 박종규, 프로이드 리는 대한투자신탁 이춘수 펀드매니저를 말한다. 장 대포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드림 박은 내재가치 발굴로, 프로이드 리는 탁월한 기업분석을 자랑한다고 그 시절 회자(膾炙)됐다. 당시 투신업계에서 베스트 펀드매니저를 꼽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스폿펀드 조기상환이었다. 스폿펀드는 1년 안에 언제라도 정해놓은 수익률을 달성하면 즉시 불린 돈을 내주는 ‘미끼 상품’이었다. 스폿펀드 조기 상환율이 높은 펀드매니저는 개인적으로 단타매매 능력이 뛰어난 셈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펀드에 사람 이름을 붙여 판매하던 바람이 불었다. ‘박현주 1호 펀드’, ‘골든칩 1호 장동헌 펀드’, ‘김석규 MVP 1호’, ‘홀인원 손병호 펀드’ 등이 앞 다퉈 시장에 나왔다. 사실 ‘실명(實名) 펀드’는 투자자들이 기존 투신업계에 품었던 불신을 역이용한 발상이었다. 실명 펀드의 효시(嚆矢)인 박현주 펀드가 뮤추얼펀드의 투명성에, 미래에셋자산운용 박현주 사장의 이름을 묶어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투신업계도 자사 펀드매니저들의 이름을 내걸었고 광고 모델로도 등장시켜 맞불을 놓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현재 자산운용업계에서 유명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과거 내로라하던 매니저들은 대부분 자산운용사 등의 경영자로 변신했거나 시장을 떠났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가 직함 바로 옆에 ‘펀드매니저’라고 써넣은 명함을 사용하고 강신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는 것이 눈길을 끄는 정도다. 김영일 한투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잠시 시장을 떠났다가 복귀한, ‘매우 드문’ 고참 현역으로 꼽힌다. 모두 국내 펀드매니저의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현상이다. 이제 펀드는 매니저 개인의 역량보다는 주로 운용사의 시스템에 따라 관리된다. 매니저 개인이 옴치고 뛸 만한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유명세가 들어설 자리도 사라진 것이다. 매니저들의 평균 나이도 30대 중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점이 있다. 바로 펀드매니저들의 빈번한 이직이다. 10년 전 실명 펀드가 반짝했다가 사라진 것도 간판 매니저들이 회사를 옮긴 영향이 컸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철새 매니저들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2007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운용전문인력의 평균 이직률이 48.4%에 이른다고 밝혔다. 2명 중 1명꼴로 회사를 떠난 셈이다.

미국의 피터 린치가 ‘그와 비교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찬사’라고 했던 펀드매니저가 있다. 유럽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앤서니 볼턴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어려운 시간을 통해 단련된 운용자, 관록 있는 노병을 보고 싶다.” 여기에 다음 구절을 추가했으면 한다. “한국에서도.”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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