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미국에서 있었던 제3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어 7일(현지 시간) 영국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훌륭하게 대처한 노하우를 묻는 참가국 장관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의 3분기(7∼9월) 경제성장률이 발표된 직후여서인지 이들의 관심이 더욱 높았다는 전언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런 호평(好評)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을까. 출국 직전 그의 언행을 보면 아마도 아닌 쪽에 가까울 것 같다. 그는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한국 경제는 지금 매우 중요한 변곡점에 위치해 있다”는 발언으로 고뇌의 깊이를 드러냈다.
G20 재무장관 회의 직전인 6일 미국에서 날아든 10월 미국의 실업률 통계는 더욱 그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10월 실업률이 10.2%로 26년 만에 10%를 넘어섰다는 소식은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소비력이 상당 기간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이 언급한 ‘중요한 변곡점’을 해외 석학들은 한국 경제 구조를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지향으로 바꿔야 할 시점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지난달 갖가지 행사로 한국을 찾은 해외 석학들이 한국 경제에 던진 충고는 거의 유사했다. 해외에서 눈을 돌려 이제 국내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가토 다카토시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한국 등) 아시아 경제 국가들은 내수시장에 더욱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비슷한 지적들은 있어 왔지만 이번만큼 강한 적은 없었다. 한국 경제의 외형적인 성장에 수출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지만 국민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 등 직접적인 국민생활에 미치는 기여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부분이 수출 기업인 제조업의 취업 유발계수는 9.2명으로 주로 내수산업인 서비스업의 18.1명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같은 경제구조가 지속된다면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경제 구조 속에 바깥 나라의 사정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이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내년 경제의 주요 변수로 중국을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위안화의 평가 절상을 받아들이면서 내수시장을 키워야만 우리나라 수출도 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다.
물론 정부가 내수시장 활성화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이나 전문자격사 시장 활성화 방안 등 내수산업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정책들이 관련 이해집단의 반발과 관련 부처의 발목 잡기로 지연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 그 이후’를 위해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던지는 고언에 언제까지 갖가지 이유로 귀를 닫아둘 것인가. 한국이 내부 체력을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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