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대박 신화’ 결과만 보이고 과정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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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내가 원하는 정보만 찾기에 무수한 실패 사례엔 귀닫아
성공의 숨은 노력 함께 보며 ‘투자는 내가’ 주인의식 필요


미국의 전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의 일화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공군장교의 영웅적인 전투 활동을 묘사하면서 이를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로 치켜세웠다. 레이건에게 이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한 기자가 실제 그런 군인이 있었는지 고증을 해봤지만 그런 전투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1944년에 나온 한 전쟁영화에서 레이건이 말한 것과 너무나 흡사한 인물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기자는 당시 백악관 대변인에게 레이건의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물었다. 대변인은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사실처럼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자신이 오래전에 본 영화를 현실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다. 기억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죽박죽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때론 없던 기억을 억지로 지어내며 전혀 상관없는 일과 자신의 기억을 연관 짓기도 한다. 이렇게 기억을 내가 편한 대로 조작하다 보면 귀인오류(misattribution)에 빠진다. 이 오류에 빠진 투자자는 투자의 결과에 대해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이유를 만들어 갖다 붙이는 잘못을 저지른다. 결과가 좋은 투자는 자신이 잘 판단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결과가 좋지 않은 투자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투자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비난의 대상은 그것을 추천한 금융기관의 직원, 직장 동료, 또 무능한 정치인이나 관료일 수도 있다.

물론 투자 실패에 남의 탓이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건강한 투자는 불가능하다. 투자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행동은 ‘내가 판단하고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결정에 대해 자신이 회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투자는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투자는 꼭 내가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또 시장이 회복되면 항상 주변에는 ‘누가 어디에 투자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더라’는 식의 얘기가 많이 들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성공사례는 관심 있게 듣는 사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투자자들의 무수히 많은 실패사례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도 물론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나름대로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투자자들은 그것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얻은 성공인 양 쉽게 받아들인다. 또 자기도 운만 따라준다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본받는 자세는 좋다. 그러나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리스크 관리는 무시한 채 오로지 그 결과만 쫓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성공한 사례, 그중에서도 그 결과만 보고 자신도 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생존편의(survivorship bias)라고 한다. ‘로또 명당’이라 소문난 가게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남들이 그 가게에서 복권을 샀더니 대박이 났다는 얘기(결과)를 듣고 복권의 구입 장소와 당첨확률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무시한 채 무작정 그 가게로 몰려가는 것이다(로또 명당이라 소문난 곳이 실제 당첨자가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 이유는 그 가게가 진짜 명당이라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복권을 사는 고객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신화가 만들어지면 많은 사람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리로 뛰어든다. 물론 그 결과는 극소수의 성공과 무수히 많은 실패다. 정보기술(IT) 버블이 한창일 때 무작정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손실을 본 일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펀드가 한창 대중화됐을 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개발도상국 펀드에 가입했다가 지금까지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주위에 많다. ‘급등주’나 ‘대박주’의 환상에 젖어 자신의 전 재산을 거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며 투자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기억 데이터베이스가 이토록 정확하지 않다면 과거로부터 배울 도리는 없다. 그렇다면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 둬야 할까? 과거를 거울삼아 투자를 할 때는 혹시 내가 원하는 기억만을 찾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점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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