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연내 입법예고 “경영권 방어에 쓰일 비용 신성장 동력에 투자 가능” “무능 경영 퇴출 불가” 지적도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는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가 도입된다. 기업은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는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기업 정관에 신주인수선택권(새로 발행되는 주식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을 기존 주주에게 부여하는 포이즌 필 규정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공청회를 통해 이런 내용의 포이즌 필 도입안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연내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봄 정기국회에서 이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대주주의 경영권 양도 목적으로 남용될 소지를 막기 위해 신주인수선택권을 주주 이외에 제3자에게 배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주총이나 이사회 결의가 있으면 행사 기간 이전에도 신주인수선택권 전체를 무상 소각할 수도 있다.
신주인수선택권 행사로 신주가 발행될 경우 행사가액은 주식의 액면가보다 낮아도 된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주주들이 신주인수선택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재계는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 등에 쓰는 비용을 신성장동력에 투자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아 이 제도의 도입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M&A의 순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식회사는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정관에 근거 규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이후 적대적 M&A 상황에서 이사회 결의만으로 각 주주에게 신주인수선택권을 줄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주주의 지분을 쉽게 늘리고 적대적 M&A 세력의 주식보유 비율을 낮춰 M&A를 막는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A사가 모두 1000주를 발행했고 이 중 40%인 400주를 적대적 M&A 세력이 사들여 경영권을 공격할 때 A사는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 발행되는 주식 1주씩 모두 600주를 더 주는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 적대세력이 한 주도 못 받으면 전체 1600주 가운데 400주밖에 보유하지 못해 이들의 지분은 기존 40%에서 25%로 줄어든다.
이 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기업들이 잠재적 M&A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쌓아둔 자금을 신성장동력 확충이나 신기술 육성에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2008년 1월 말 현재 700여 개 코스피 상장회사가 보유한 자사주 규모는 64조 원대로, 정부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이 가운데 상당액이 신규 투자에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기업 총수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억제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이날 공청회에서 “무능한 경영진 퇴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기업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어렵게 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재계는 포이즌 필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정부의 방안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모색해 줄 것을 촉구했다.
황인학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경제계는 포이즌 필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다만 정부가 도입 요건으로 삼고 있는 주주총회 참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는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황 본부장은 “특별결의를 할 정도로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라면 사실상 경영권 방어수단이 별로 필요 없는 기업인데 이런 기업에만 인정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다”며 “이사회 결의와 같은 완화된 요건으로 도입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KT&G나 포스코 등 지분 구조가 분산된 기업에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전경련 측의 설명이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포이즌 필(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도될 때 기존 주주가 헐값으로 신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 경영권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 기존 주주의 지분 확보를 쉽게 하고 인수자의 인수비용을 크게 해 적대적 인수를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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