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미국의 고용지표가 부진하게 발표됐다. 일자리가 20만 개가량 줄어들었고, 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소비 관련 지표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질소비지출은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소비자신뢰지수도 하락세로 반전됐다. 현재의 소비도 부진한데, 고용 사정까지 나빠지고 있으니 미국 소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소비 회복 지연에 대한 무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는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소비 및 고용 관련 지표들은 부진하지만 미국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경기는 좋다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체감경기를 대표하는 미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는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제조업 경기의 본격적인 확장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줘야 기업의 수익성도 개선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업과 소비자의 체감심리가 이렇게 큰 괴리를 나타내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괴리는 미국 밖의 해외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기업들이 자국 내에서는 물건을 팔기 힘들지만 미국 밖의 판매는 호조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 진행된 약(弱)달러 현상 역시 미국 수출업체들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줬을 것이다. 미국 증시의 강세도 해외 수요의 회복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최근 미국 증시에서 강세를 나타내는 종목군은 대부분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종목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내수경기를 반영하는 내수주들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올해 3월 이후 나타나는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는 미국의 유동성 공급과 중국(아시아)의 내수 부양이라는 양대 축으로 진행됐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 등의 형태로 자산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미국이었고, 그 유동성의 수혜는 경제 펀더멘털의 회복이 빠른 아시아 국가들이 누렸다. 이번 경기 회복 사이클에서 미국은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렵다. 자산 버블에 기댄 자신들의 과소비로 금융위기가 터졌고, 최근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의 완화를 위해서도 미국 소비가 탄력적으로 살아나기는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제와 증시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소비 규모는 미국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의 현재 모습은 미국의 소비가 회복되기 이전까지 아시아가 내수 부양을 하면서 가까스로 버티는 형국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 소비의 부진은 악재이지만 아직까지는 아시아 내수의 힘으로 그 부작용이 어느 정도 완충되고 있다. 또 미국 소비의 부진은 중앙은행의 유동성 환수 시기를 뒤로 늦추면서 오히려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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