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한국, 대만과 30년 신발전쟁 ‘역전승 비법’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1990년대 초 한국 신발 업체들은 산발적으로 중국에 진출해 전략적으로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한 대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첨단 기능성 신발 생산과 독자브랜드 구축에 힘쓴다면 다시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 DBR 그래픽
1990년대 초 한국 신발 업체들은 산발적으로 중국에 진출해 전략적으로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한 대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첨단 기능성 신발 생산과 독자브랜드 구축에 힘쓴다면 다시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 DBR 그래픽
개별적-산발적 中진출한 한국 업체들
中에 생산 클러스터 구축한 대만에 완패

첨단 기능성 신발 개발해 브랜드 키우고
북한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면 승산 충분


한국과 대만은 지난 30년간 국제무대에서 치열한 ‘신발전쟁’을 벌여왔다. 세 차례의 접전이 펼쳐졌는데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전적은 1승 2패로 한국이 열세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1차전에는 분업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저가 신발시장을 선점한 대만이 승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벌어진 2차전에서는 부산지역 업체를 중심으로 스포츠화 대량생산에 성공한 한국이 승리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하며 벌어진 3차전에서는 대만이 압승했다. 한국업체는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반면 대만 회사들은 전략적으로 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해 확고한 경쟁우위를 점했다. 권창오 신발산업진흥센터 소장은 한국이 향후 신발전쟁에서 이기려면 첨단 기능성 신발을 적극 개발해 이를 브랜드화하고 북한의 노동자원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5호(11월 15일자)에 실린 권 소장 기고문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 3차 신발전쟁에서 한국이 패한 이유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대만 신발업체들은 중국에 진출했다. 나이키 등 글로벌 원청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싼 나라로 옮겨 이익률을 높이려 했기 때문이다. 1992년까지 대만 신발업체의 80%가 중국으로 옮겼다.

이때 대만 업체들은 광둥(廣東) 성 둥관(東莞) 지역에 신발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반경 50km 안에 완제품, 고무, 사출, 금형 등 거의 모든 유관 업체들이 자리 잡자 저절로 대규모 생산단지가 완성됐다. 납기 단축, 인적 네트워크 구축, 정보교환 활성화 등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대만과 홍콩 주식시장에서 기업공개(IPO)도 벌였다. ‘규모의 경제’를 무기 삼아 중국 정부와의 협상도 유리하게 진행했다. 결국 둥관은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낮은 생산비용을 합한 세계 최대 신발산업단지로 등극했다.

당시 한국 기업들도 칭다오(靑島)로 기지를 옮겼지만 산업 클러스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의 실책까지 겹쳤다. 정부는 생산기지 공동화와 기술 유출을 우려해 1989년부터 4년간 신발기업의 해외투자를 규제했다. 해외진출 기업의 수와 투자액을 제한하니 칭다오의 한국 기업은 둥관의 대만 기업보다 협업능력과 정보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해외 진출, ‘어디(Where)’보다 ‘어떻게(How to)’가 중요

혹자는 대만 기업의 3차전 승리 비결을 중국과 대만의 문화적 유사성, 유리한 의사소통 등으로 꼽는다. 그러나 필자가 2008년 중국에 진출한 70개 한국 기업과 50개 대만 기업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외 직접투자(FDI)의 성패는 입지요인이 아니라 전략요인이 좌우했다.

FDI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투자대상국 요인(생산비, 인프라 수준, 투자제도, 국가위험도, 문화적 거리), △기술자원 요인(기술, 바이어와의 관계, FDI 경험, 인적자원), △투자전략 요인(투자지분, 부품업체 동반진출, 생산 현지화) 등 세 가지로 구분해 회귀분석을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투자대상국 요인에서는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거의 없었다. 둥관이나 칭다오의 입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뜻이다. 기술자원 요인의 수준은 한국과 대만 기업이 비슷했다. 결국 투자전략 요인이 대만과 한국의 승패를 가른 셈이다.

한국 기업은 대만 기업들보다 합작회사 설립 등 투자지분 분산, 부품업체와의 동반 진출, 부품의 현지화 전략에서 뒤떨어졌다. 이는 둥관과 칭다오 생산 클러스터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현재 대만 기업은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세계 3대 스포츠화 브랜드의 생산량 중 70%를 도맡고 있다.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0%에 불과하다.

○ 한국, 다시 세계 정복 꿈꾼다

물론 대만 기업의 우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있다. 첨단 기능성 신발 개발, 브랜드 사업, 북한 노동력 활용이라는 세 가지 요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첨단 미래 신발 주도=한국은 정보기술(IT)과 신발을 결합해 웰빙화, GPS화, 체중조절화, 운동거리 측정화, 음악신발 등 각종 인공지능 신발을 양산하고 있다. IT 신발의 성패는 부품이 좌우한다. IT 신발의 핵심부품은 휴대전화의 부품과 유사한 센서, 마이크로모터, 배터리 등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휴대전화는 한국의 대표산업이다. IT 신발 분야의 성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신발 브랜드 사업=대만 업체들은 자체 브랜드가 별로 없다. 반면 한국에는 트렉스타, 비트로, 스타필드, EXR 등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이 많다. 아무리 대량생산을 해도 OEM 업체의 수익성은 한계가 있다. 위에서 설명한 첨단기능성 신발은 기능만 뛰어나면 한국 브랜드로도 충분히 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해외진출의 문호가 열린 만큼 외국 시장에서 통할 한국 브랜드를 키우고 국내 신발산업의 축을 제조에서 브랜드 및 디자인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북한 활용=북한을 생산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은 OEM 분야에서도 대만을 앞설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인건비가 싸다. 기술 인력이나 원·부자재의 수급도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신발 클러스터’란 개념에서 볼 때 매우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는 바로 옆 도시로 이동해도 평균 3, 4시간이 걸린다. 부산에서 개성은 6, 7시간이면 충분하다.

한국의 신발산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회생의 불씨를 계속 지펴왔다. 이제 그간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 재도약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신발산업이 새로운 제품과 전략으로 세계시장을 제패할 그날을 학수고대한다.

권창오 신발산업진흥센터 소장 cokwon@shoenet.org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5호(2009년 1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Special Report/R&D Innovation
기업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동력은 연구개발(R&D)이다. R&D는 혁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R&D 생산성 저하로 고심하고 있다. 이제 혁신 과정 자체를 혁신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방형 혁신’이다. 과감하게 내부의 지적재산을 공개하거나 외부의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과 함께 혁신 과정 자체의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방법론을 종합했다.

▼제안 성공 노하우/일정 지연시키는 ‘폭탄’을 제거하라
성공적인 일정 관리가 성공적인 제안서를 낳는다. 제안서 작성 시 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네 가지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섹션(부분)이 아니라 제안서 전체를 잘 써야 한다. 둘째, 개인이 아닌 프로세스를 관리한다. 셋째, 실력이 부족해 일정을 어기는 ‘폭탄’ 직원을 제거한다. 넷째, 킥오프 미팅부터 잘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