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설득하고 싶은가? 상대방 ‘역린’을 헤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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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이 있다.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한비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논리뿐 아니라 상대방의 역린을 읽어내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DBR 사진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이 있다.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한비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논리뿐 아니라 상대방의 역린을 읽어내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DBR 사진
상대의 내면을 읽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옳은 주장도 설득력 잃어

수사학적 감수성이 논리보다 중요


서양에서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논리를 매우 중시한다. 실제 서양철학의 상징인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소크라테스가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장면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반면에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논어(論語)를 읽어보면 전혀 다른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공자는 어떤 제자가 인(仁)에 대해 물어보자 “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 다른 제자가 질문했을 때에는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서양의 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논어를 읽고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사용하는 용어의 정확한 정의(definition)부터 요구한다. 공자가 인에 대해 말한 것처럼 개념의 정의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성적 논증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공자는 비논리적인 철학자였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는 인이란 ‘두 사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가능케 하는 주체의 자세나 태도’라고 생각했다. 즉, 인(仁)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날 때 갈등 관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공자에겐 인의 이념을 제자들에게 설득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히 이런 사람은 타자와 조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에게 “말을 어눌하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할 때 힘든 일은 피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자는 이런 성향의 제자에게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이익은 나중에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만약 공자가 인을 자신이 정의한 대로 모든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제자 중 일부는 스승이 제안하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고압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며 비판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공자와 제자들 사이에 갈등과 불신이 생길 수도 있다.

대화에 대한 공자의 견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수사학(rhetoric)’을 싫어했다. 논리학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수사학은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을 ‘궤변’이라고 폄하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에게,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논리를 추구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지향했던 논리의 궁극적 목적은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논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강력한 논리 때문에 상대방이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논리를 중시했지만 그 본질적인 목적이 설득에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공자는 이런 점에서 위대하다. 그는 논리를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공자는 인을 체계적으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대화 상대방에게 맞춰 그의 이념을 전파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공자는 상대의 내면까지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동양철학의 전통은 한비자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조화보다는 군주의 강력한 법치를 표방했던 그도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에 앞서 상대의 내면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릇 사람은 용이란 짐승을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逆鱗)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한비자 ‘세난(說難)’

이 구절은 한비자가 ‘유세(遊說)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했던 말이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정치적 이념을 군주에게 설득하려 할 때, 군주의 의식적 이성뿐 아니라 무의식적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한비자의 통찰은 매우 단순하다.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수사학적 노력이 실패하면 그 주장은 채택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역린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반성하고 체계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타자를 설득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내 이야기가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옳다면 상대방은 의식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옳다고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나의 주장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나의 이야기가 그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무의식적 정서, 즉 상대방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읽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그 감수성을 읽을 때에만 우리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비판적,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상대방의 역린을 읽을 수 있는 수사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빛을 발할 수 없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정리=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이 글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5호(11월 15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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