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시장은 미국 브랜드의 약세와 일본 자동차의 여전한 강세 속에 우리 자동차가 틈을 비집고 약진하는 판세인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흔들림 없는 전통의 강자가 있으니 바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다. 고급 차종에서 세 브랜드의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명성만을 등에 업은 채 신진 브랜드들의 격전을 관망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을 잃지 않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특히 벤츠와 BMW는 재편될 시장을 위한 새로운 이미지 론칭을 2004년과 2005년에 발 빠르게 시작했다.
두 브랜드가 준비한 이미지 론칭은 대조적이다. 처한 상황이 유사한 듯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인데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우선 벤츠를 보자.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고급 차종에서 벤츠의 권위는 1990년대 들어 렉서스, 인피니티 등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판매도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벤츠의 위상은 위험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사내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벤츠의 광고대행사인 머클리플러스파트너는 당시 신진 브랜드들과 소비자의 관계가 기능이나 가격 등을 매개로 형성돼 있으며 감성적 공감대까지 형성할 정도는 못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지적은 요즘 국내 브랜드들에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기능이나 가격 등에 기초해 형성된 소비자와 브랜드의 관계는 매우 불안하다. 언제 그 관계가 끊어질지 알 수 없다.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로 관계가 깊어져야 비로소 안정성을 갖게 되고 경쟁사가 흉내 내기도 힘들어진다. 이런 점을 잘 아는 벤츠에서는 수십 년간 쌓아온 소비자와의 감성적 유대감, 다시 말해 브랜드 충성도를 더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리더십을 지켜 나가기로 했다.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먼저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벤츠와 함께 찍은 추억의 사진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광고를 냈다. 소비자들이 보내온 사진들은 벤츠와의 추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에서부터 석양을 배경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는 벤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보내온 계층도 베이비부머에서부터 X세대까지 폭이 넓었다. 이는 말 그대로 벤츠가 소비자의 생활 속에 들어가 오랜 세월 함께해 왔다는 증거였다. 그 사진들을 몽타주해 광고를 만들었다.
사진 속에 담긴 벤츠와의 감성적 유대감은 벤츠를 사본 적이 없는 계층에까지 전이되기 시작했다. 2004년 캠페인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벤츠의 구매 고려 가능성(brand consideration)이 약 11%나 상승했다. 특히 벤츠로서는 취약했던 X세대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캠페인은 대성공이었다.
BMW의 상황은 이와 조금 달랐다. 2005년까지 BMW는 꾸준히 판매가 늘었고 해결해야 할 특별한 이슈도 없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BMW는 핵심 고객층은 지키면서 BMW에 관심이 없던 새로운 고객층을 사로잡을 새로운 캠페인을 GSD&M과 추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야 했는데 통상적인 방식은 멋진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BMW의 새로운 자태를 연출해 고객층의 감성을 흔드는 것이다. 우리가 많이 보는 자동차 광고 디자인의 전형이다. 그러나 GSD&M은 다른 방식을 취했다. 먼저 BMW의 주 고객층을 다시 규정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은 ‘창의적 계층’이란 용어를 개발한 리처드 플로리다와 공동으로 이뤄졌다. 창의적 계층은 급속하게 성장한, 교육수준이 높고 지불능력이 좋은 미국의 특정 계층을 일컫는데 진보적이고 공학적 지식에 관심이 많으며 사고력이 높고 적극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GSD&M과 플로리다는 창의적 계층의 마케팅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 계층’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찾아냈다. 이는 미국 인구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독립적이고 개혁적이며 브랜드의 성격과 심미적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고객층을 말한다. GSD&M과 플로리다는 이들이 BMW의 고객층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들이 중시하는 독립성, 특히 심미적 스타일을 결정하는 디자이너들의 독립성을 첫 번째 캠페인의 이슈로 삼았다. 결과는?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BMW사 직원들의 사기까지 높일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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