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기업들의 ‘세종시 선택권’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폭탄 돌리기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말했다. 세종시 얘기다. 이 문제에 기업이 엮이면서 폭탄 돌리기 게임은 시작됐다고 했다. 정부가 세종시에 기업을 유치해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서부터 ‘공’이 기업들 편으로 넘어 왔다는 것. 정부와 정치권 일각이 ‘기업 몇 군데서 관심을 표명하더라’식으로 군불을 지피고, 이런 저런 구실로 짝짓기 대상이 된 기업들은 뜬금없는 해명에 힘이 빠진다는 것이었다.

기업이 땅만 있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지를 정하기까지는 따져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땅값, 세제(稅制)는 기본이고 항만 도로 등 물류, 전후방산업과의 연계 등이 우선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종시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있고, 내륙에 위치해 기업 입지로서 결코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없다.

입질을 기대하려면 좋은 미끼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세종시 개념을 기업도시로 바꾸기로 하고 관련 법 개정 방침을 밝힌 만큼 좋은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 인센티브에 따라서는 세종시 이전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기업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전을 정말 어렵게 하는 것은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설 때라는 재계 관계자들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경기 화성시에 있는 중소기업 A사는 2006년 이전에 입사한 직원들에게 30만 원을 더 주고 있다. 이 회사가 2006년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화성으로 이전할 때 대부분의 숙련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해서 30만 원을 더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30만 원이 출퇴근 교통비인 셈이다. LG전자는 올해 3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2600억 원을 들여 ‘서초 연구개발(R&D) 캠퍼스’를 완공했다. 서울의 금싸라기 땅에 연구시설을 짓기로 한 것은 우수한 연구인력의 발을 묶어두려는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는 입지에 가장 민감한 곳이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센터라고 했다. 현대제철(당진)이 포스코(포항)보다 좋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이라는 얘기가 엉뚱하게 들리지만 않는다. 오죽 하면 ‘고급 인재들의 심리적인 마지노선은 천안’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핵심 인력 확보가 기업이전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인센티브가 있더라도 인재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면 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내년 경영계획을 짜느라 매우 분주한 시점이다. 3분기까지 좋았던 실적이 4분기에 미국의 더딘 회복세, 환율 하락 등으로 주춤할 것으로 관측되면서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펼쳐야 할 이들에게 세종시 기업이전 문제는 경영활동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이 제 역할을 못하면 경제회복에도 적잖은 차질이 우려된다. 정부가 세종시 자족기능 확충 방안의 하나로 기업유치를 적극 검토할 수 있지만, 결정 자체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행여 등을 떠밀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강운 산업부 차장 kwoon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