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코리아서 물러난 박재하 前회장 실패담 지식재산 영업 모델 이해 부족 대학특허 사들이자 여론 악화 한국 특허인력 양성기회 놓쳐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세계 최대의 특허괴물’ 인텔렉추얼벤처스(IV) 코리아의 박재하 회장(64·사진)은 취임 1년 6개월 만인 올해 8월 말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다. 심영택 IV코리아 사장도 뒤따라 사표를 냈다.
올해 상반기(1∼6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로부터 270여 건의 연구 아이디어와 특허를 사재기해 국내 여론의 반발을 샀던 IV코리아는 경영진 퇴임 이후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회장, 사장 자리도 아직 공석이다. 회사 측은 “한국시장 철수 계획은 없지만 현재 활동을 중단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 전 회장을 만나 IV코리아의 실패담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대통령비서관,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이후 금호텔레콤 사장을 거쳐 1998년부터 모토로라코리아에 들어가 10년 가까이 일하며 한국지사 부회장, 미국 본사 부사장에 올라 대표적인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모토로라코리아 고문을 맡고 있다.
박 전 회장은 IV코리아의 활동이 어려움을 겪은 데 대해 “지식재산을 확보한 뒤 특허 사용료로 돈을 버는 IV의 사업모델이 한국에서 생소했고, 이런 사업방식에 대한 경계심이 영업활동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괴물의 사업모델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IV가 진출한 일본 중국 인도 싱가포르보다 한국의 반발이 유달리 강했다고 한다. 국내 언론이 특허괴물과 IV의 문제점을 잇달아 지적하고 국가정보원이 기술유출 여부를 조사하고 나서자 주변의 시선이 싸늘하게 바뀌었다는 것. 박 전 회장은 “IV가 한국 대학의 특허를 사들이며 여론의 표적이 되자 친구들이 매일같이 전화해 ‘왜 그렇게 나쁜 회사에서 일하냐’고 걱정했다”고 전했다.
IV코리아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박 전 회장은 “IV의 사업모델이 대학의 연구자들과 발명가들에게는 ‘에인절(천사) 투자자’로 받아들여졌지만 삼성, LG와 같은 제조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거센 반발을 샀다”며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특허괴물과 맞닥뜨릴 일이 잦을 텐데 국내에서 특허 전문 인력을 양성할 좋은 기회를 놓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미국 IV 본사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배려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반대 정서를 고려해 진출 후 3년 동안은 한국기업과 소송을 하지 말고 특허 매입과, 소송을 통해 돈을 버는 IV 내의 펀드(IIF)를 서로 분리시키자고 제안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모토로라코리아의 경우 1967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며 반도체, 휴대전화 분야에서 10만 명의 국내 인력을 양성하고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등 협력적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며 “한국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윈윈(win-win)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