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 싸게 나와도 정비 - 디자인 - 연비때문에 꺼려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 미국차 왜 인기 없나

관세 높아 안산다?
세율 같은 일본차-유럽차
5년새 5.8배 - 2.6배 늘어
비관세 장벽 때문?
광고제한 등 규제 다 풀려
안전-환경기준 다른건 당연
한국인 취향 아는지
덩치 크고 기름 많이 먹고
한국과 ‘디자인 코드’ 달라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시장 문을 더 개방해야 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똑같이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5일 한미재계회의 만찬 연설)

“한국은 그동안 비관세 장벽을 동원해 외국산 자동차를 몰아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수정해야 한다.”(미국 상하원 의원 12명, 6일 커크 대표에게 보낸 서한)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대부분 “미국이 한국 시장을 너무 모른다”거나 “미국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발언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 미국 차 인기 없는 이유는?

동아일보 산업부가 벌인 조사에서 전문가 27명 중 18명은 미국 차가 한국에서 인기 없는 이유를 ‘제품 자체의 문제’라고 답했다. 특히 “전반적인 품질이 안 좋은 데다 너무 크고 연료소비효율이 안 좋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이 많았다. 김기찬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은 “미국 차 업체들은 그동안 제품보다는 금융 부문에 더 신경을 써 왔다”며 “생산 현장의 경쟁력 부족이 자동차에 드러난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특히 ‘디자인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의 차관급 인사가 한국을 방문해서 시장 반응이 좋은 미국 자동차 모델에 대해 듣고 “왜 미국에서는 별 인기도 없는 그 차가 한국에서는 잘 팔리냐”며 반문했다는 일화도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미국 차가 안 팔리는 이유에 대해 ‘디자인’을 꼽은 사람이 16.8%였다. 미국 차의 값이 10% 싸져도 다른 차를 사겠다고 답한 사람 중 18.7%는 그 이유를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고유가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적으로 연비가 떨어지는 미국 차가 인기가 없었던 반면, 중소형차가 강한 한국의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약진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파산 사태를 겪고, 포드도 경영난에 빠지면서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브랜드 이미지도 땅에 떨어졌다.

○ “딱히 무역장벽이라 할 만한 게…”

한국 시장의 무역장벽에 대해서도 전문가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차에 대해 관세 외에 무역 장벽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안전·환경 등 자동차 관련 기준이나 규제’를 꼽은 사람은 9명(33.3%), ‘소비자 취향이나 국민 정서’라고 답한 이는 10명(37.0%)이었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나라마다 기후나 운전문화가 다른 만큼 안전·환경 관련 기준과 규제도 달라야 한다”며 “한국에서 차를 수출할 때도 대상 국가의 기준에 맞춘다. 이걸 무역장벽이라고 부를 순 없다”고 비판했다.

소비자 취향이나 국민 정서에 대해서도 한 전문가는 “그런 점이 미국 차를 한국에서 파는 데는 걸림돌이 되겠지만 그걸 무역장벽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한국 정부가 미국 차 구매 장려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얘기냐”고 반문했다. 한 수입차 업계 종사자는 “과거에는 수입차는 광고를 할 수 없는 등 실제적인 장벽이 있었다”며 “지금은 관세 외에 딱히 장벽이라 할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역장벽이 딱히 없다고 답한 전문가도 4명(14.8%)이었다.

○ 유럽·일본차 판매는 고속 성장

한국 자동차 시장에 무역장벽이 있다고 해도 유럽·일본 자동차들은 계속 판매량과 점유율이 성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03년 수입차 전체 판매량은 1만9481대로 시장 점유율은 1.9%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6만1648대(점유율 6.0%)로 뛰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판매량이 매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늘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유럽 자동차 판매는 1만2535대(점유율 1.2%)에서 3만2756대(3.2%)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일본 자동차도 3774대(0.4%)에서 2만1912대(2.1%)로 고속 성장했다. 미국 차는 같은 기간 3172대(0.3%)에서 6980대(0.7%)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BMW ‘뉴7 시리즈’의 경우 올해 한국에서 1∼10월 1578대가 팔려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이 팔렸다. 수입차에 적용되는 관세율(8%)은 모두 똑같다.

GM대우자동차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정식 수입 경로를 통해 팔리는 미국 차 브랜드는 크라이슬러코리아가 판매하는 크라이슬러·지프와 도지, 포드코리아가 판매하는 포드와 링컨, GM코리아가 판매하는 캐딜락과 사브 등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한국 車시장 개방수준, 美보다 높거나 비슷”
한국, 발효 즉시 관세철폐
美 3000cc 이상은 3년유예
대형승용차 중과세도 줄여

■ 전문가 FTA 협상 결과 분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동차부문 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미국 측이 불리하다”며 수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세 양허안의 내용을 보면 한국의 개방 수준이 더 높거나 양국이 비슷하다는 게 자동차 및 통상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미 양국은 FTA가 발효되면 대부분의 자동차 품목에 대한 관세를 3년 내에 철폐하기로 했다. 한국은 친환경차를 제외한 승용차 전체에 대해 발효 즉시 현행 8%인 관세율을 없애게 된다. 반면 미국은 3000cc 이하 승용차에 대해서는 관세를 즉시 없애지만 3000cc가 넘는 승용차에 대해서는 현행 2.5%인 관세를 3년 내에 철폐하기로 했다. 한국의 승용차 수출이 대부분 중소형차 위주라고 해도 미국 측에 유리한 안이다.

현재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승용차 중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그랜저’ ‘제네시스 쿠페’ ‘베라크루즈’와 기아자동차 ‘오피러스’ ‘모하비’ ‘쏘렌토’ ‘카니발’ 등은 3000cc가 넘는 모델이다. 한국도 하이브리드 차량 등 친환경차에 대해서는 관세를 10년 내 철폐하기로 했으나 현재 미국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친환경차 모델은 없다.

또 한국은 개별소비세(옛 특별소비세)와 자동차세를 간소화해 대형 승용차에 대한 세금을 줄이기로 했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차의 대부분이 대형차인 미국은 그동안 대형차에 대한 중과세 제도가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세제는 환경보호 등을 감안한 내정(內政)에 해당하는 부분인데도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자동차부문에서는 명백하게 한국이 더 많이 양보했는데 미국에서 이를 문제 삼으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한국의 현행 수입차 관세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한미 FTA를 빨리 비준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동차 협상 결과를 겉만 보면 한국이 더 많이 개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경제적 이익을 따져 보면 한미 FTA로 더 득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美정부, 한국이 시장 안열어 車 못판다고 인식
車산업 부흥 통한 실업사태 해결에도 조바심▼
■ 美 ‘車 개방’ 압박 배경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자동차 분야를 집요하게 문제 삼는 것은 무엇보다 자국 자동차산업이 심각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으로 8864대를 수출한 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 10월 한 달에만 5만3000대를 미국에서 팔았다며 자동차 분야의 무역역조 현상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미국에 공장을 두고 있어 미국과 한국의 ‘한국 자동차’ 셈법에 차이가 있지만 한국이 자동차시장 문을 제대로 열지 않는 바람에 미국 차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 타결된 한미 FTA 자동차 분야 협상이 공정한 무역조건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5일(현지 시간) 한미재계회의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시장에서 똑같이 경쟁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고용 창출효과가 큰 미국 자동차산업을 빨리 불황의 터널에서 탈출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불안한 미국의 고용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있다. 대선 승리 1년을 하루 앞두고 이달 3일 치러진 버지니아 주지사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한 것도 결국 일자리 창출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집권당인 민주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 자동차 재협상을 압박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와 미국 최대 노동조합단체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설문에 참여한 자동차 및 통상 전문가들

강철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이사
김기찬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김종철 한국토요타 이사
김준동 지식경제부 대변인 (전 산업자원부 자유무역협정팀장)
김태년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통상협력팀장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
동근태 한불모터스 영업기획 이사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송재성 크라이슬러코리아 상무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엄진환 한국닛산 이사
오정준 볼보자동차코리아 마케팅담당 이사
유영면 자동차부품연구원 에너지효율향상사업단장
유지수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
이동훈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대표
이상호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
장재준 GM코리아 대표
전광민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
정법상 미쓰비시모터스코리아 세일즈&마케팅 상무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트레버 힐 아우디코리아 대표 총 27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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