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상품-PB 세분화 “모든 소비층을 타깃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7일 03시 00분


英테스코-日로손 등 글로벌 유통업계 변화의 현장

테스코 PB등급 4가지로 분류
가격-품질따라 선택 폭 넓혀
소비침체 日 저가형 할인점 인기
‘로손 100엔’ ‘돈키호테’ 히트



9일 일본 도쿄(東京) 다이칸야마(代官山)에 있는 편의점 ‘내추럴 로손’. 예쁜 상점이 밀집한 이 동네의 내추럴 로손에는 유독 여성 고객이 많았다. 여성들은 편의점 안에 딸린 작은 카페에서 과일주스를 주문하고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상품 진열대에는 유기농 비누와 장미꽃을 넣은 화장품, 애견용 제품이 놓여 있었다. 편의점이라기보다는 카페 같은 풍경이었다.

일본 편의점 업계 2위인 로손은 점포 형태를 △로손 △내추럴 로손 △로손 100엔 △해피 로손 등 네 가지 형태로 나눴다. 내추럴 로손의 타깃은 참살이를 추구하고 가처분소득이 높은 직장 여성이다.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들의 소득과 소비 패턴이 다양해지면서 글로벌 유통업계에는 ‘하이브리드형 세분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형마트+레스토랑’ ‘편의점+100엔 숍’ 등 영업 형태가 합종연횡하고 점포와 자체 브랜드(PB) 제품은 더욱 잘게 등급이 매겨진다. 과거 부자였지만 요즘엔 알뜰 가치구매를 하는 소비자, 기름값 아까워 대형마트까지 가는 대신 집 근처 편의점에서 소포장 먹을거리를 사는 싱글족 등 소비자 분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대형마트인 테스코 크라우치 익스프레스점. 이곳에서는 최근 ‘레스토랑 프로젝트’란 이름의 ‘포스트 금융위기’ 판매 전략이 시행되고 있다. 메인과 부속 요리, 디저트, 와인 한 병까지 레스토랑급 코스 요리 2인분이 포장된 고급 PB 제품을 9파운드(약 1만7000원)에 판다. 살인적인 영국 물가를 감안하면 솔깃한 가격이다. 과거 ‘잘나가던’ 전직 투자은행원들은 이제 외식의 우아한 분위기는 포기할지라도 가족과 즐기는 메뉴의 ‘질’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아 이 상품을 집어 든다.

세계 3위 유통기업인 테스코는 다양해진 고객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PB를 올 초 더욱 세분화했다. ‘밸류(저가형)’ ‘테스코(표준형)’ ‘파이니스트(고급형)’ 등 기존 세 가지 PB등급에 ‘디스카운트(실속형)’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디스카운트는 밸류와 테스코 사이의 가격대다. 테스코 측은 “지난해 금융위기로 극단적 최저가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와 표준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 사이에 또 다른 계층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종합슈퍼(GMS)인 ‘이온’은 일본 SPA(제조 소매업) 의류업체 유니클로의 인기 방한의류 ‘히트텍’(1500엔·약 1만9200원)을 벤치마킹해 ‘히트팩트’(780엔·약 9900원)를 내놓았다. 따뜻한 겨울을 나고 싶은 소비자들은 유니클로의 절반 가격인 이온의 실속형 PB제품을 열렬히 환영했다.

로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도입한 100엔 편의점인 ‘로손 100엔’은 술과 담배, 도시락 등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품목을 100엔 균일가(세금 포함 105엔)로 판다. ‘해피 로손’은 아이와 엄마를 위한 ‘놀이방+편의점’ 콘셉트다. 이 때문에 로손은 ‘타깃 고객에게 맞는 차별화 콘셉트를 적재적소에 선보이는 변신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편의점도 세분화하고 있다. 바이더웨이는 전국 1460개 매장 중 250곳을 원두커피를 뽑는 카페 형태로, GS25는 전체 매장의 5%인 200곳을 빵 굽는 베이커리 형태로 운영한다. 대학생 이현철 씨(25)는 “인천 차이나타운 ‘공화춘’에서 먹은 자장면이 생각나면 GS25 편의점의 1200원짜리 ‘공화춘 자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편의점들은 불황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려는 소비자들을 위해 유명 외식업체와 손잡고 분주히 PB식품을 개발한다.

극심한 소비침체를 겪는 일본에서는 요즘 저가형 할인점이 단연 인기다. 업계 1위 ‘돈키호테’가 지난달 중순 PB제품으로 내놓은 690엔(약 8800원)짜리 청바지는 1주일 만에 일본 전역에서 매진됐다. 100엔 숍뿐 아니라 300엔 숍까지 생겨났다. 300엔 숍 ‘쿠쿠’는 물방울무늬가 있는 예쁜 고무장갑 등으로 ‘저가 상품은 촌스럽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일본 다이소산업과 합작한 국내 1000원 숍 ‘다이소’는 국내 1호점을 연 지 12년 만인 올 8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500호점을 열었다. 이곳은 하루 800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업체 측은 “부촌을 대표하는 대치점 매출이 전국 520개 매장 중 매출 1위인 서울 노원역점에 버금간다”며 “부유층 중에서도 실속 상품을 싸게 사려는 고객 수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상철 일본 유통과학대 교수는 “비싼 루이뷔통 핸드백을 들고 100엔 햄버거를 먹는 소비자의 이중 욕구를 이해하려면 고객의 작은 소리와 조그만 몸짓에도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런던=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