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아산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생계형 좌파”라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아산 직원들이 말하는 ‘좌파’는 사전적 의미의 좌파가 아닙니다. 북한과 가깝다는 뜻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좌파라는 단어를 수식하는 ‘생계형’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끕니다. 현대아산의 한 직원은 “사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북한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회사”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래저래 우리 정부와 북한 모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빗댄 자조 섞인 푸념인 셈입니다.
18일은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한 지 1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회사로서는 마땅히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기념일을 맞는 현대아산의 분위기는 우울합니다. 지난해 7월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이후 1년 4개월이 지난 현대아산의 어두운 현실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개성관광도 끊겼습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중단되면서 2236억 원의 매출을 올릴 기회를 놓쳤다고 말합니다.
현대아산은 국내 공사 수주와 비무장지대 인접 지역 생태계 관광 등에서 활로를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주력 사업인 대북(對北) 관광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현대아산은 구조조정과 임직원 급여 삭감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이후 회사를 떠난 직원이 684명이나 됩니다.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뒤로 현대아산에 한때 ‘희망의 빛’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북한 측이 고위급 회담 재개를 놓고 신경전만 벌이고 있을 뿐이어서 좀처럼 관광 재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대북 사업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사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다면 대북 사업은 ‘누군가는 해야 할 사업’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개별 회사의 사정을 고려할 일은 아니겠지만, 최근 현대아산의 처지가 꽉 막힌 남북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