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찾아다니는 세관, 규제 해결사로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1월 21일 03시 00분


관세청, 기업에 탐사단 파견
한달새 개혁과제 143개 발굴
묵은민원 처리-절세법 전수도


지난달 12일 강원 속초시의 대한통운 속초영업소 보세창고를 찾은 속초세관 직원 김재훈 씨는 한 컨테이너 앞에서 코를 잡았다. 5년째 컨테이너에 방치된 마른 고추가 썩어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이 창고에만 마른 고추, 절인 오이 등 ‘악성(惡性) 화물’이 컨테이너 6개 분량, 23t이나 됐다.

“통관이 안 된 상황에서 화주(貨主)와 연락이 끊겼어요. 보관료를 못 받는 건 둘째 치고 매립이나 소각을 하려 해도 지방자치단체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대한통운 직원의 하소연이었다.

김 씨는 세관 직원 6명을 모아 ‘악성화물 해결팀’을 꾸리고 속초시청을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속초시 측은 “우리 지역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아니라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악취가 사라지면 보세창고 이용이 늘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듭 설득하자 시청 관계자들이 마음을 바꿨다. 김 씨는 절인 오이 등 소각이 어려운 화물 2t을 트럭에 싣고 폐기장으로 운반해 직접 매립했다. 소각장이 있는 고성군을 설득해 마른 고추 21t을 소각하는 데도 성공했다. 대한통운 관계자는 “악취가 사라진 것은 물론 추가로 공간을 확보해 연간 2200만 원의 이익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탁상 행정’으로는 규제를 체감할 수 없다며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 ‘규제 발굴 탐사단’을 꾸려 52개 기업에 파견했다. 세관 직원 87명으로 구성된 탐사단은 지난달 각 기업에서 최대 3일씩 관세 관련 업무를 체험하면서 규제개혁 과제 143개를 발굴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가능한 것은 즉시 해결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것은 해당 부서에 이관해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탐사단은 업체의 눈높이에서 관세 행정을 체험하며 곳곳에 ‘규제의 전봇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롯데면세점을 찾은 서울세관 직원들은 영업소에 면세품을 반입하기 위해 매일 세관을 방문해야 한다는 면세점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접하고 일일 신고를 팩스로 대신하기로 했다. 면세점 직원이 세관을 직접 방문하는 횟수는 주 1회로 대폭 줄었다.

세금에 대해 잘 모르는 중소기업에는 절세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선박 건조업체 ㈜티케이에스를 찾은 광주세관 직원들은 수입 원자재 중 일부는 관세 환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서류작업을 통해 업체에 5억2000만 원을 돌려줬다.

파주세관은 반도체 부품 생산업체 시그네틱스㈜에서 납기일을 맞추기 힘들다는 고민을 접하고 우수업체의 경우 신고만 하면 심사를 받지 않아도 통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이 회사는 월평균 225시간이나 걸렸던 통관 대기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빨라진 통관절차 덕분에 지난달에는 창사 이후 38년 만에 월간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파주세관 관계자는 “현장에 나와 보니 납기가 빠듯한 기업으로서는 ‘시간이 곧 돈’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규제 발굴 탐사단은 공무원들이 직접 민간 기업의 처지가 돼 관세 업무를 체험하면서 규제 개혁 과제를 발굴하는 동시에 상담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기업들의 평을 받고 있다. 세계은행이 183개국의 기업 활동 환경을 조사해 9월 초 내놓은 ‘2010 기업 환경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입 과정의 절차와 시간, 비용을 평가하는 국제교역 환경의 경우 한국은 인구 1300만 명 이상인 61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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