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엔-달러 환율)가 14년 4개월 만에 86엔 대를 돌파하는 등 엔고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전날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발표 후 달러 가치가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엔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자 일본 재무성은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오전 장중 한때 86.52엔까지 떨어져 1995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엔화 가치가 급등한 것은 전날 FOMC가 발표한 ‘약달러 기조 유지’가 빌미를 제공했다. 외환시장이 이를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당분간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고 엔화와 유로화가 반사 효과로 폭등한 것이다. 세계 투자자금들이 달러의 대안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유로와 엔으로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엔화 가치는 지난해 9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급등하기 시작해 같은 해 12월 중순엔 달러당 87엔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진정을 찾는 듯했으나 10월부터 다시 상승 기조로 돌아섰다. 일본 외환시장에서는 “86엔마저 깨지면 85엔대 진입은 시간문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조만간 회복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 경제와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이날 도쿄증시에서 닛케이평균주가는 전일 대비 58.40엔 내린 9,383.24엔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전날 미국 뉴욕 증시는 올랐지만 일본 증시는 엔고 영향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
일본 수출업체 역시 엔고로 실적이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엔화가 오르면 수입가격 인하 효과도 있지만 수출 타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최근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0엔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은 첫해에는 0.26%, 이듬해에는 0.47%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일본 재무성은 엔화 가치 상승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다. 후지이 히로히사(藤井裕久) 재무상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엔화 가치 급등은 달러 약세 때문이지만 환율시장이 이처럼 이례적으로 움직일 경우 이에 맞는 대응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 외환시장은 “일본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견해가 많아 엔고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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