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두바이 신화’ 현장 2신
“물가 오르고 경기는 내리막”
두바이 드림 꿈꾸던 이주민들
새 기회 찾아 다른 도시로
30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중심가에 있는 월드트레이드센터 1층의 주식전광판은 온통 붉은빛 일색이었다. 나흘간의 이슬람 연휴를 마치고 다시 개장했지만 ‘두바이 쇼크’ 탓에 일제히 하락세로 출발한 것이다. 이날 두바이 증시는 그동안의 악재를 한꺼번에 반영하며 거의 모든 종목의 주가가 급락했다.
낮은 탄식이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객장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예상한 일이라는 듯 말이 없었다.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다”
이날 거래소 객장은 개장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두바이 재무부는 지난달 25일 최대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를 신청했고, 이 파장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하지만 정작 두바이 증시는 이슬람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로 4일 동안 문을 닫아 폭풍을 피할 수 있었다.
이날 투자자들의 관심은 하락 여부보다는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집중됐다. 개장 전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이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 가닥 희망을 갖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두바이 종합주가지수(DFM)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전날보다 120.96포인트(5.87%) 급락한 1,970.20으로 시작한 뒤 시간이 갈수록 하락폭을 키워 7.30%나 떨어졌다.
개인투자자 무함마드 맘수르 씨(36)는 “건설사 주식을 팔려고 나왔는데 벌써 10%나 떨어졌다. 그래도 살 사람이 없다”며 “최소한 다음 주말까지는 증시가 안정세를 보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다른 투자자는 “곧 아부다비에서 지원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며 ‘부자 이웃’의 지원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아부다비 증시도 이날 8.3% 급락했다.
○무너지는 ‘두바이 드림’
두바이는 그동안 기업과 근로자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세계 전역에서 두바이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8년 만에 인구(164만6000명)는 91% 급증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바이 드림이 끝나가고 있음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파라드 무함마드 후세인 씨(22)가 작년 5월 두바이에서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두바이는 사업을 위한 곳”이라며 자신감에 넘쳤다. 이란 남동부 자헤단 출신인 후세인 씨는 3년 전 두바이로 건너와 삼촌과 인력 파견업체를 차렸다. 30일 다시 만난 그는 “물가는 비싸고 경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두바이에서 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인력 수요가 줄어든 데다 사기까지 당해 회사 문을 닫고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연방국인 샤르자로 건너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파키스탄인 택시운전사 알리 굴름 씨(28)는 “여기서 버는 돈으로 파키스탄에 있는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데 요즘은 수입이 점점 줄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국 건설사들도 신규 발주가 끊기다시피 한 두바이를 떠나 새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자금이 넉넉한 아부다비가 주 무대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아부다비에서 총 20억 달러의 공사를 수주하고 두바이에 있던 기능인력 500여 명과 엔지니어 200여 명을 아부다비로 옮겼다. 현대건설 아랍에미리트 지사도 10월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사무실을 옮겼다. 삼성물산 현지 관계자는 “사우디 현지법인을 올해 초에 만들었고 카타르 알제리 등으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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