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 보안 속 면접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면접이 열린 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KB금융지주 본사 1층 로비에서 경비원들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 이날 KB금융지주는 경비인력을 평소보다 2배 이상 늘리는 등 철저한 보안 속에 면접을 진행했다. 이훈구 기자
3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KB금융지주 8층 부회장실. 차기 회장을 선출할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회의는 오전 9시부터였지만 단독 후보인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새벽같이 출근했다. 오전 10시경 7층 면접장으로 내려가는 그의 눈자위는 붉게 충혈돼 있었다. 강 행장의 한 측근은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료 출신의 경쟁후보였던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과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가 선임과정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사퇴한 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회의 초반 3명의 위원이 면접을 내년 초로 미루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표결 결과 9명 중 6명이 ‘면접 강행’ 쪽에 표를 던졌다. 면접에서 강 행장은 지주 회장과 은행장 직을 분리할 계획을 설명하고 국민은행의 도약을 위해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오후 2시 40분 조담 이사회 의장 겸 회추위 위원장은 회의장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만장일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해 만장일치는 아니었다. 일부 위원은 반대의사를 밝혔다가 표결에 들어가서야 대세를 따라 찬성으로 돌아섰다. 겉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내부에선 막판까지 진통이 있었던 셈이다.
강 행장이 자산 331조 원의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의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는 과정은 반전과 억측,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사외이사의 권한과 한계 △금융자율화 시대 관(官)과 민간 은행의 관계 △뚜렷한 주인이 없는 은행의 경영진 선임 모델 등 한국 금융계가 직면한 과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 수면 위로 떠오른 사외이사 권력화 논란
캠코 이 사장은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강 행장과 오랜 기간 일하면서 ‘업무적 거래관계’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외이사의 권력화’ 논란이다.
그동안 KB금융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최고경영자(CEO)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발언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고 있다고 자평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경쟁후보들이 회장 선임과정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는 근거로 사외이사와 CEO의 유착관계를 꼽음에 따라 KB금융 이사회의 위상에 흠집이 났다.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KB금융의 경우 사외이사 자체가 권력화돼 있어 경영진이 사외이사와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부분의 금융지주회사처럼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할 때는 사외이사가 제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하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독립성을 강조하던 사람도 CEO가 의장으로 있는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들어가 몇 년이 지나면 CEO의 측근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KB금융 사외이사는 임기가 3년 이상 보장되고 연간 보수도 약 6000만 원으로 국내 금융계 및 대기업 사외이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경영진과 유착할 소지가 크고 사외이사들 간에도 서로 연임을 지원해 주는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는 지적을 금융계에서 받아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3일 “사외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또다시 불거진 관치 논란
금융계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인 이 사장과 김 전 대표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 동시에 사퇴한 것을 두고 ‘판을 새로 짜기 위한’ 사전 교감이 금융당국과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면접을 하루 앞둔 2일 사견임을 전제로 “새로운 틀에서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1명이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밝혀왔다. 정부 및 공기업이 의미 있는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상업은행의 CEO 선출 절차에 대해 관료들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런 기류가 감지되자 국민은행 노동조합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내고 “금융위원회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관치적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행장이 회장으로 선출된 직후 회장과 행장직을 분리할 뜻을 밝힌 것은 당국의 의중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외이사들만 참여해서 행장이나 금융지주의 회장을 선출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공기업 사장을 선임할 때처럼 외부인사로 회추위를 구성하면 나중에 CEO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며 “개인 주주들이 선임한 인사를 사외이사에 포함시키면 CEO에 대한 견제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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