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소비자에게 관심을 끈 상품은 그 자체로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히트 상품’을 늘어놓고 보면 1년이 스쳐가는 이유다. 올해는 어땠을까. 느닷없는 신종 인플루엔자 공포 때문에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신종 플루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경기 불황에도 발광다이오드(LED) TV 등 고가의 가전제품이 관심을 받았다. 동시에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상품도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 산업부는 9일 삼성경제연구소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후보 중 13개 상품과 서비스를 선정해 2009년을 들여다봤다. 선정된 품목은 △신종 플루 관련 상품 △워킹화 △걷기체험관광(올레길, 둘레길 등) △스크린골프 △스마트폰 △LED TV △YF쏘나타(현대차) △안티 에이징(anti-aging) 상품 △5만 원권 △보금자리주택 △막걸리 △남녀탐구생활(tvN프로그램) △워낭소리(독립영화) 등이다.
○ 신종 플루 여파 건강 관심 폭증
2009년은 신종 플루로 몸살을 앓았다. 일부 대형마트는 신종 플루 예방 상품인 손세정제를 1인당 1개로 제한해 판매했으며 온라인쇼핑몰에서는 과거 최다 판매 순위 상위권에 얼씬도 못했던 마스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홍삼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제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덩달아 잘 팔렸다.
‘걷기 열풍’은 방어적인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멋을 강조한 운동화가 아니라 걷기에 최적인 워킹화가 유행했고 그와 더불어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 등 각종 걷기코스가 관광 상품화됐다. 운동에 재미까지 결합한 스크린골프는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젊은층까지 자주 찾는 곳으로 자리 잡아 새로운 놀이문화가 됐다.
○ 가치소비, “나를 위해선 아낌없이”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고가의 LED TV와 스마트폰이나 YF쏘나타 등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온라인쇼핑몰에서 최저가 비교를 통해 단돈 1000원을 아끼는 사람들도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상품에는 과감히 지갑을 여는 ‘가치소비’를 한 것. 삼성전자가 올해 3월 출시한 LED TV는 기존의 액정표시장치(LCD) TV보다 30∼40% 비싸지만 3cm도 안 되는 두께와 선명한 화질로 인기를 끌었다. 애플의 휴대전화 ‘아이폰’도 11월 말 발매 직후 1주일 만에 7만 대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같은 현상은 ‘포미(for me)족’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자신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인 이들은 소비를 자신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고 소비 초점을 차별화에 둔다.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 등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하는 안티 에이징 제품이 이들에게 많이 팔렸다. 지난해 경제 불황 여파가 올 상반기까지 이어졌지만 주요 백화점이 선전(善戰)한 것은 각종 명품을 구입한 포미족 덕분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 그래도 불황은 불황
‘작은 사치(small luxury)’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경기 불황은 큰 그림자였다. 집 없는 서민들은 시세의 50∼70% 수준으로 서울 등 수도권에 지어진 보금자리주택에 큰 관심을 보였다. 10월 예약을 받은 결과 평균 4.1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으며 특히 젊은층의 경쟁이 치열해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평균 19.8 대 1의 청약률을 보였다.
막걸리는 올해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지난 몇 년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보졸레 누보’와의 경쟁에서 이길 정도. 한류 붐이나 한식 세계화 추진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원래 막걸리가 비싸지 않고 과거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는 점에서 불황 속에서 피로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막걸리를 찾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 탈복잡, 단순화에 열광
점덤 더 복잡해져 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오히려 단순한 것을 추구하는 상품도 의외로 히트를 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립영화 ‘워낭소리’. 이 영화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시골의 삶에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또 케이블 채널 tvN이 방영하고 있는 ‘남녀탐구생활’은 복잡한 남녀 사이의 문제를 단순화해 케이블 채널의 ‘초대박’ 시청률인 4∼5%를 보이고 있다. 특히 높낮이가 전혀 없는 톤으로 단순화한 성우의 목소리도 젊은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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