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부장급 이직 ‘찬바람만 쌩쌩’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금융위기에 경기불안 심화
올해 구인의뢰 평균 25% 줄어

꼭 필요한 인력만 소수 채용
“내년엔 올해보다 나아질듯”

《올해 7월 이용직 씨(가명·47)는 사장 자리가 비어 있는 한 중소 화장품회사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3개월 동안 세 번에 걸쳐 어렵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종 결정이 내려진 11월 초 이 회사는 “경기가 나빠 사장 영입계획을 포기하고 사장대행 체제로 꾸리기로 했다”고 이 씨에게 통보했다.

김모 씨(36)는 명문대 출신 회계사로 지난해 인수합병(M&A) 분야의 외국계 투자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입사 3개월 만인 올해 초 해고 통보를 받고 4개월간 구직에 애를 먹었다. 결국 작은 자산운용사에 입사했지만 연봉은 크게 줄었다.

이 씨는 “괜찮은 경력을 쌓아왔는데 이직에 이렇게 애먹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경력 이직 희망자들에게 올해는 악몽과도 같은 한 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침체가 확산되면서 기업은 채용을 줄이고 이직 희망자들은 이직을 스스로 접어야 했다.》
○ “경력직 구인” 전년 대비 25% 줄어


경력 이직 알선 및 헤드헌팅 전문업체인 커리어케어, 엔터웨이파트너스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기업의 구인 의뢰는 총 69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227명보다 25%가량 줄었다. 업종별로는 공공기관·공사의 구인 의뢰가 전년 동기 대비 75.5%로 가장 많이 줄었고 이어 철강·금속·비금속 등 소재 부문이 68.6%, 물류가 47.9%, 유통·무역이 24.4% 각각 감소했다. 정보기술(IT)·전기전자·기계·자동차 분야는 기술직과 영업직에서 핵심인력을 소수 채용하는 데 그쳤다.

이에 반해 구인 의뢰를 한 후 실제 채용으로 이어진 비율은 2008년보다 높아져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구인, 채용하는’ 추세를 반영했다. 엔터웨이파트너스가 2349건의 채용 의뢰 중 실제 채용된 사람 수를 조사한 결과 24.9%(585명)가 채용돼 지난해보다 6.9%포인트 높아졌다. 이런 추이는 패션·섬유에서 두드러졌다. 구인 의뢰는 전년 동기 대비 8.7% 줄었지만 실제 채용률은 45.1%로 지난해의 2.5배에 이르렀다.

금융 분야에서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경력 인재들이 일자리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금융회사로서는 인재 채용의 기회가 됐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올해 금융 부문 구인 의뢰는 지난해보다 2.8% 늘어났다.

○ 불황기 이직, 부장급은 울고 갔다

직급별로는 올해 부장급 이직이 지난해보다 감소한 것이 눈에 띈다. 채용된 585명을 직급별로 분석한 결과 과장·차장 및 임원 채용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증가한 반면에 부장급은 6.6% 줄었다.

중간 관리자인 부장급 채용이 감소한 이유에 대해 채용전문가들은 “불황기에 다른 채용은 줄일 수 있지만 업무에 필요한 실무자(과장·차장) 채용과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임원급 영입은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수 엔터웨이파트너스 대표는 “평소에도 부장급 이직은 많지 않은 편”이라며 “부장은 내부 승진이 많아 외부 영입이 애매한 데다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부장 영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원·대리급의 경력 이직도 지난해보다 6.4% 줄었는데, 이는 사원·대리급 채용의 경우 헤드헌팅 업체를 이용하기보다 경력 공채 형식으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 내년 이직 “올해보단 나을 것” 전망

내년 경력 이직 채용 시장은 올해보다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핵심 기술·영업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일안 커리어케어 전무는 “올해 하반기 들어 ‘꼭 필요한 채용은 한다’는 추세가 두드러졌다”며 “외부 변수가 없다면 내년 경력 이직 시장은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은행권에서는 퇴직연금 영업·컨설팅 인력이, 증권사에서는 주식브로커 인력 채용이 활발하고 패션 분야는 상품기획자(MD), 마케팅 전문가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계·자동차·IT·전기전자 분야는 친환경 관련 신기술, 모바일 솔루션·콘텐츠 부문 채용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물류·유통은 기존 직원들의 공석을 보충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소비재·서비스·식음료 분야는 철저한 검증을 거친 정예 인재 영입이 꾸준히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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