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찾은 서울 양천구 목동 하이마트 오목교점. 4층 ‘디지털 라이프 체험관’에는 디지털카메라와 TV 등의 전자제품 옆으로 노트북컴퓨터 6대가 ‘인터넷 체험코너’란 푯말과 함께 놓여 있었다. 이날도 고객 한 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하이마트와 인터넷쇼핑몰의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다.
하이마트의 전자제품 가격은 대부분 인터넷보다 비싸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 코너에서 고객이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는 걸 말리지 않는다. 감춰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소비자들은 ‘적절한 가격 차이’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비싼 값을 주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산다.
회사원 한유경 씨(31)는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한 뒤 집 앞 이마트에서 전자제품을 산다. 가격이 인터넷보다 대부분 비싸지만 한 씨는 할인점을 고집한다. 이유를 묻자 한 씨는 “보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터넷과 오프라인 매장의 가격이 다른 건 ‘유통수수료’로 불리는 중간 상인 몫의 마진 때문이다. 인터넷 매장에선 적게는 제품 가격의 8%, 일반적으로 13% 정도가 유통수수료지만 할인점 등 오프라인에선 평균 수수료가 30%에 이른다. 인터넷이 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씨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면 제품을 교환하려 해도 내가 직접 택배로 반송해야 한다”며 “할인점에선 제품이 고장 나도 장 보러 가는 길에 가져가면 바로 교환해 주거나 수리해 주기 때문에 돈을 좀 더 내도 안 아깝다”고 말했다.
할인점이나 가전제품 전문점 등 오프라인 매장의 고객은 주로 30대 이상의 가정주부다. 이들은 2만∼3만 원을 아끼려고 신경 쓰기보다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겠다고 생각한다.
일부 제품은 인터넷보다 오프라인 매장이 더 쌀 때도 있다. 주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제품이다. 제조업체가 일부러 오프라인 매장을 위해 제품 가격을 낮춰 팔기 때문이다.
본보 취재팀은 직접 서울 용산전자상가, 하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찾아다니며 몇몇 전자제품의 가격을 조사한 뒤 인터넷쇼핑몰과 비교했다. 그 결과 아이리버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P7’은 인터넷에서 평균 14만5000원에 판매됐다. 이 제품은 용산전자상가에선 19만5000원, 롯데마트에선 23만8000원에 팔렸다. 이 제품은 올해 1월부터 판매된 구식 모델이다.
반면 같은 회사에서 올해 9월에 발매된 PMP ‘E250’은 용산전자상가에서는 17만5000원에 팔겠다고 했는데, 인터넷에선 19만∼25만 원에 비싸게 팔렸다. 하이마트에선 이 제품을 14만9000원에 판다.
전자업계에서 이렇게 매장에 따라 제품 가격을 차별화하는 건 오프라인 판매가 ‘지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선 제품이 누리꾼의 ‘입소문’에 따라 매출이 하루 단위로도 급격히 변한다. 경쟁사 신제품이 등장하면 어제 잘 팔리던 제품이 오늘은 판매가 뚝 끊기는 일도 종종 있다.
이달 초 찾은 용산전자상가의 터미널 상가. 가장 목 좋은 곳이라는 3층 용산역 연결 출구 앞 상가에는 ‘노트북 고가(高價) 매입’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가 20개 이상 늘어서 있었다. HP나 삼성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부 대리점을 제외하고는 노트북컴퓨터 판매점 대부분이 중고 제품을 사고팔았다.
이렇게 팔리는 중고 노트북컴퓨터의 가격은 30만∼100만 원. 대부분 4, 5년 된 제품이었다. 전자상가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편이라는 이 지역에 중고 제품 가게가 밀집하게 된 것 또한 인터넷 때문이었다.
용산전자상가는 할인점보다는 인터넷쇼핑몰에 가깝다. 오프라인 매장이면서도 서비스보다는 가격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장 임대료 등이 있기 때문에 새 제품을 인터넷보다 싸게 팔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중고 제품은 다르다. 소비자는 여러 제품을 직접 살펴보고 살 수 있고 심지어 간단한 애프터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 이곳을 선호한다. 상인들은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기술도 있고 단종된 제품의 부품도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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