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EO들의 ‘내 생애 소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3일 16시 39분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모 사장은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의 도시를 탐방한 뒤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CEO로 20년 가까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꿈은 더 간절해졌다. "기업경영도 르네상스 시대처럼 경영과 예술, 인문학이 어우러질 때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16일 이탈리아로 떠났다.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의 유적지와 미술관을 돌며 여행 과정을 직접 캠코더로 촬영해 다큐멘터리로 만들 계획이다. 국내 대학의 인문학 교수들이 동행했으며 현지 전문가들도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이 과정에서 창조경영을 위한 영감을 얻고 21세기 한국의 르네상스를 위한 청사진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일레나운의 CEO인 송문영 대표는 최근 결혼 25주년 은혼식을 맞아 아내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최고의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가 마련한 선물은 아내가 좋아하는 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10월 30일자 공연 티켓. 송 대표는 공연을 함께 본 뒤 아내에게 사이먼 래틀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특별한 경험'까지 선물했다.

KT 권순철 네트워크연구소장(상무)의 어릴 적 꿈은 전투기를 타고 창공을 누비는 '빨간 마후라'였다. "나이를 먹고 중년이 돼서도 꿈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권 상무는 드디어 새해 첫날 소원을 이룬다. 29일 호주로 가서 현지 전투기 체험관광 전문회사 '젯라이드'에서 탑승 교육을 받은 뒤 내년 1월 1일 실제 전투기에 탑승할 계획이다. 그는 "전투기를 타고 새해 일출을 보며 나와 가족, 회사의 새로운 도약을 빌 것"이라고 말했다.

위에 소개된 사례는 모두 삼성카드의 '내 생애 최고의 소원' 프로젝트로 이뤄지고 있는 CEO들의 소원이다. 삼성카드는 삼성경제연구소 CEO 회원 225명을 대상으로 '내 생애 최고의 소원'을 응모 받아 9명의 소원을 이뤄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연회비 200만 원짜리 VVIP카드 '라움'을 선보인 뒤 이 카드의 특화된 글로벌 컨시어지(개인비서)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글로벌 컨시어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여행 문화 스포츠 교육 쇼핑과 관련해 고객이 요구한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해주는 게 특징이다.

삼성카드는 CEO들이 소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과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김하늘 프리미엄마케팅팀 차장은 "비용을 마련하는 것보다 매진된 공연의 표를 구하거나 최고 전문가들을 CEO들과 연결시켜 주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CEO들은 어떤 소원을 이루고 싶어할까. 응모한 225명 가운데 40%의 CEO가 "바쁜 업무로 소홀히 했던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다"며 은혼식, 가족여행 등의 소원을 이뤄달라고 주문했다. 19%는 전투기 탑승, 히말라야 등반, 남극 탐험 등 도전, 모험과 관련된 소원을 꼽았다. 이들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열정이 많이 사라졌다"며 "열정을 다시 불러올 기회를 갖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CEO도 많았다. 16%가 장애아동 연주단의 해외공연 지원, 아프리카 현지 봉사활동 같은 사회봉사를 최고의 소원으로 꼽았다. 6%의 CEO는 바쁜 일정 때문에 늘 마음으로만 품고 있었던 배움의 기회를 갖고 싶다고 답했다. 특히 색소폰 연주처럼 학창 시절부터 연주하고 싶었던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대답한 CEO가 많았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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