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두고 재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는 또 다른 걱정에 빠져 있다. 이들은 “한국노총과 한국경총 등이 참여한 노사정(勞使政) 합의안은 중소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한나라당이 발의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그보다 더한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했다. 직원이 170∼350여 명인 중소기업 네 곳의 대표를 24일 전화로 인터뷰해 고민을 들어봤다.》 모호한 ‘통상업무’ 개념 노무 전문인력 없는 中企도 타임오프 범위 협상 불가피 상급노조 개입땐 속수무책
자동차부품업체 A사의 박모 대표는 “한나라당 개정안대로 노조 전임자의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면서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우리 같은 회사는 노조 전임자 인건비가 지금의 3배 이상으로 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국내 직원이 350명가량이며 노조 전임자 3명에 대한 인건비로 매년 1억 원가량을 쓰고 있다. 워낙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로서는 노조가 추가로 1개나 2개가 더 생겨 그 노조들이 각각 전임자를 1, 2명씩만 둔 뒤 활동비를 지급해 달라고 해도 노무비용이 지금보다 증가한다는 논리다. 박 대표는 “중소기업들의 재정 상태를 다 알지 않냐”며 “지금 쓰고 있는 1억 원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종업원 240명 규모의 B사 김모 대표도 “현재 노조에 주는 돈이 전임자 임금과 사무실 유지비, 유류비 등 연 4000만 원 정도인데 이 돈을 그대로 다 주거나 더 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이민경 노무사는 “중소기업들은 노조 전임자 1명이 담당하는 노조원 수가 대기업보다 훨씬 적어 전임자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과 타임오프제를 함께 실시하면 오히려 노무비용이 더 늘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조 전임자 1인당 조합원 수는 100명 미만 사업장은 38.4명, 100∼299명 82.4명, 300∼999명 111.0명, 1000명 이상 196.9명이며 중소기업 노조 전임자들의 업무량은 대기업 노조 전임자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 “법 제대로 아는 사람 없는데…”
화학물질 제조업체인 C사의 최모 대표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우리 회사가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와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전임자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통상적인 노동조합 관리업무’가 뭔지를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이 시행되면 상당수 사업장에서 이를 두고 노사협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최 대표는 “민주노총 등 잘 조직된 상급단체들이 중소기업 노조들에 협상 논리를 제공하면서 협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며 “회사 측에는 노동 관련 법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전담인력조차 없는 게 상당수 중소기업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종업원이 200여 명인 D사도 “우리는 설립 이후로 무분규 사업장인데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센 노조’가 들어올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인호 중기중앙회 인력정책팀장은 “한나라당 개정안의 ‘통상적인 노조관리 업무’는 너무 광범위해서 영세한 중소기업 처지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조항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기중앙회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타임오프 허용시간 등에 한계를 두지 않으면 중소기업들은 노무관리 전담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는 지금과 똑같이 지급하면서 노사 간 갈등으로 노무관리 업무만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타임오프제:
근로시간 면제 제도.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 측의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단체교섭, 고충처리, 산업재해 예방 등 노사 공통의 이해가 걸린 업무에 종사한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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