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열혈 상사우먼 보스니아서 ‘월척’낚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 기수연 삼성물산 주임

한국기업 불모지서 단독작전
590억 병원현대화사업 수주
“옛 유고연방국 차례로 공략”
세밑에도 보스니아출장 떠나

사진 제공 삼성물산
사진 제공 삼성물산
“저도 이곳 보스니아에 오면서 ‘전쟁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치안은 무척 좋더라고요. 하하. 아직 사람들 관심이 많지 않은 지역이지만 잘 뒤지면 숨겨진 무언가가 분명 더 나올 것 같아요.”

최근 무역업계에서는 20대의 한 젊은 ‘상사 우먼’이 화제다. 주인공은 삼성물산 기계산업팀 기수연 주임(27). 그는 최근 보스니아에서 홀로 5000만 달러(약 590억 원) 규모의 병원 현대화 사업을 따냈다. 상사 분야는 해외 출장이 잦고 열악한 환경의 신흥국 대상 사업도 많아 현장을 뛰는 여성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더욱이 보스니아는 ‘내전’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를 만큼 상사업계에서도 사실상 불모지와 다름없는 곳이다. 실제 이곳에는 국내 기업 지사는커녕 주재하는 한국 공관이 없다. 교민조차도 선교사 한 가족이 전부다.

이런 곳에서 기 주임은 올해 200일가량을 홀로 머물며 이번 사업을 따냈다. 그는 “보스니아에 살다시피 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발주처에 신뢰를 심은 것”을 비결로 꼽았다. 실제 기 주임은 올해 한 달에 1, 2번꼴로 서울과 보스니아를 오갔다. 한 번 가는 데만 많게는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16시간 가는 여정이지만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정이 많고 남의 일에 관심도 많아요. 상사 업무를 잘하려면 현지 문화와 국민성을 이해하는 게 아주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이런 접근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기 주임은 “입찰까지 절차가 매우 길고 복잡한 지역 특성 탓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수백 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중요 고객의 관심사를 기억했다 감동적인 이벤트를 마련하거나 여러 변수에 따른 다양한 사업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등 여성 특유의 세심한 준비를 통해 고객사의 신임을 얻고 2년 만에 최종 수주에 성공했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출신인 기 씨는 대학시절 삼성물산에서 인턴을 한 것을 계기로 상사 업무의 매력에 끌렸다고 했다. 하지만 1년의 대부분을 외딴곳에서 혼자 보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제일 어려운 건 역시 너무 외롭다는 거예요. 한국 식당도 없어서 호텔방에서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는 보스니아가 옛 유고연방 시장을 공략하는 발판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보스니아만으로 시장성을 이야기하기엔 규모가 작지만 주변까지 고려하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곳에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같은 나라들이 있거든요.”

이번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달 사장으로부터 직접 상까지 받은 기 주임은 “수주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며 최근 다시 보스니아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도 그렇고 올해 마지막 날도 또 혼자겠네요(웃음). 그래도 보스니아에서의 경험이 독립국가연합(CIS)과 동유럽 지역의 숨겨진 보물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어요.”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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