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모래바람과 열대 밀림의 무더위 속에서 2010년 경인년 새해를 맞은 한국인들이 있다. 해외 오지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건설회사의 직원들이다.
2009년 한 해 478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수주는 가족도 없는 낯선 땅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땀이 밑바탕이 됐다. ○ 모래바람 사이의 1300여 개 철탑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사막지역.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드는 거센 모래 먼지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공사를 방해한다. 수은주는 섭씨 50도를 웃돈다. 지평선 끝과 모래언덕 사이에 유일한 인공구조물은 철탑과 그 사이를 잇는 전기 선로가 전부다. 현대건설이 세운 것이다.
현장에서 3년 반째 공사를 지휘하고 있는 김규진 부장(51)은 “선진국의 건설회사들이 열악한 공사 환경 때문에 약속한 공기를 맞추지 못했지만 현대는 항상 약속을 지켜왔다”며 “이제 중동의 많은 국가가 한국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고 말했다.
김 부장이 황량한 사막으로 부임한 것은 2006년 여름. 줄곧 컨테이너를 개조한 숙소에 살고 있지만 사우디 동부 지역과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등 6개국을 잇는 800km의 송전선이 그의 손을 거쳐 하나하나 연결되고 있다. 3억6000만 달러(약 4200억 원)의 대공사다.
사막의 연약한 지반에 80∼100m 높이의 철탑 1300여 개를 세우는 것은 지독한 난공사다. 인적도 도로도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육중한 철탑을 세우는 공사다 보니 그 어느 현장보다 고립된 조건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휴대전화나 인공위성 전화가 없을 때 차량이 사막의 모래 구덩이에 빠지면 극한의 상황에 처하곤 했다. 김 부장은 “지금은 매일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어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웃음 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역시 현대건설이 최고’라는 얘기와 함께 몇 년간의 성과물이 바로 눈앞에서 성공적으로 가동되는 장면을 볼 때 가슴이 터질 듯한 감회와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 “납치 겪고도 거기를 왜 또다시…”
2007년 1월 나이지리아 무장세력에 직원 8명과 함께 납치됐다가 61시간 만에 풀려난 대우건설 홍종택 차장(44)은 지난해 7월 다시 나이지리아를 찾았다. 주택본부 재개발재건축팀으로 복귀했다 2년 6개월 만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간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대우건설이 진행하는 2억 달러 규모의 가스 공급관 설치 공사에서 홍 차장이 맡은 역할은 현지 부족 관리다. 4∼9월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기후와 현지인들의 각종 요구사항은 공사 진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홍 차장이 다시 돌아온 것도 “나이지리아 현장의 대민(對民) 업무에 정통한 홍 차장이 꼭 필요하다”는 현장소장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220개 부족의 전통법을 인정하는 나이지리아에서 부족 주민들과의 협상은 공사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데 필수적이다. 발전기금을 달라거나 우물을 파 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주민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현장 근무자들의 사무실과 숙소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의 전원을 끄거나, 여성들이 단체로 몰려 와 옷을 벗으려고 하는 식의 물리력 행사다. 하지만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문화가 남아 있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폭력은 없다는 게 홍 차장의 설명이다.
1일엔 한국에서 공수해 온 기계로 가래떡을 뽑아 방글라데시 주방장이 담근 김치와 함께 떡국을 한 그릇 챙겨먹었다. “딸과 아들, 아내와는 거의 매일 통화합니다. 요즘 이곳은 정부와 무장단체의 관계가 좋아져 치안상태도 훨씬 나아졌죠. 혼자 애들 키우느라 고생인 아내가 신문에 인터뷰 나간다고 좋아하는 걸 보니 나름대로 새해 선물은 한 셈이죠?”(웃음)
○ 리비아에 들어설 한국형 명품 신도시
“한 달에 서너 번씩 왕복 3400km를 오가지만 올해 첫 삽을 뜰 생각을 하면 그리 멀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성원건설이 리비아 토브루크 신도시 조성사업을 본격 시작하는 올해는 이 회사 조해문 상무(60)에게 뜻 깊은 해다. 이 사업은 리비아 정부가 북부 항만도시 토브루크에 주택 5000채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조 상무는 2008년 8월부터 직원 4명과 함께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로 와서 1년 5개월째 머무르고 있다. 그는 “리비아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에 실사를 나왔을 때 잘 구성된 신도시와 고급 아파트를 보고 감탄을 거듭했다”며 “리비아 현지인들의 기대가 큰 만큼 명품 신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설계를 조율하고 리비아 정부의 사업승인서를 받기까지 조 상무는 트리폴리에서 1700km나 떨어진 토브루크의 공사 현장을 한 달에 서너 차례 오갔다.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 인근 벵가지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뒤 다시 자동차를 타고 토브루크까지 500km를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조 상무는 “리비아 사람들은 정과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서구의 건설사들처럼 논리적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며 “끈질기게 만나 인간관계를 쌓았더니 일처리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2월에 공사를 시작하면 올해 안으로 용지 조성과 배수공사 등 기반조성사업은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80년대부터 한국 건설사들이 리비아에서 쌓은 신뢰 덕분에 사업 추진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이번 신도시 공사를 잘 마무리해 선배 건설인들이 리비아에 쌓아놓은 브랜드 파워를 한 차원 더 높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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