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車-전자 中企 66% ‘갑’ 1곳에 매출 70% 의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타기업 구매설명회도 대기업 허락받고 참석

중소기업 10곳 가운데 6곳은 매출액의 70% 이상을 1개 원청업체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회사가 극소수여서 원청업체와 거래가 끊기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10곳 중 1곳은 원청업체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해 ‘로비 창구’로 활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보 5일자 A1·2면, B1면 참조
[단독]車협력사 울리는 ‘납품단가 깎기’
[단독]車협력업체 울리는 ‘부품단가 깎기’ 실태

○ 원청업체에 목매는 中企 사정

최근 서울대 경제추격연구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용역 의뢰로 작성한 ‘자동차·전자산업 하도급거래 실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 및 자동차업종 중소기업 1000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원청업체가 1개뿐인 ‘전속 거래’ 기업은 전체의 55.9%로 가장 많았다. 원청업체가 2개인 기업은 15.1%, 3개 이상은 29%였다.

전체 제조업 부문 중소기업들의 전속 거래 비율이 평균 16.6%(평균 원청업체 수는 14.5개)인 것을 감안하면 전자·자동차업종 중소기업들의 원청업체 의존도가 매우 높은 셈이다. 특히 1개 원청업체에 대한 매출 비중이 70% 이상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전체의 65.9%였으며, 매출 비중 50% 이상인 곳은 전체의 84.7%에 이르렀다. 이런 수익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지극히 불평등한 ‘갑을 관계’를 잉태하면서 영업실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인 중소기업은 △원청업체가 1개일 때 61.2% △2개 55.6% △3개 이상 51.4%로 조사돼 원청업체 수가 적을수록 실적이 나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자동차업종의 전속 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1, 2개 대기업이 전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는 현대차그룹은 2008년 현재 889개 1차 부품업체 전체 납품액(36조8486억 원)의 71.1%(26조2103억 원)를 차지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마케팅 조직은 분리돼 있으나, 원가절감 차원에서 공동구매를 하고 있어 시장지배력이 강력하다. 반면 내수시장에서 11개 자동차업체가 20년간 경쟁해 온 일본에선 부품업체들의 협상력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 中企 9.7%, 원청업체 임원 영입 로비창구로

현대·기아차 협력업체인 A사는 지난해 10월 열린 폴크스바겐 구매설명회에 참석하면서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에 미리 연락해 참석 여부를 허락받았다. A사 관계자는 “매출의 90% 이상을 현대·기아차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거래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처 다변화가 필수지만, 이처럼 대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중소기업들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대 보고서에 따르면 원청업체 출신 임직원을 자사(自社) 임원으로 영입한 중소기업은 조사대상의 9.7%였다. 특히 1차 협력업체의 경우 원청업체 출신 임원을 둔 곳이 13.9%로 더 높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자동차업체의 퇴직 간부를 협력업체 임원으로 내려 보내는 일이 종종 있다”며 “협력업체들도 이들을 로비 창구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일방적인 단가 인하압력에서 벗어나려면 해외 수출비중을 높여 거래기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기계산업팀장은 “정부가 부품업체들의 자발적인 인수합병을 유도해 규모를 키운 뒤 글로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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