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그윽한 기품이다. 흙반죽을 석 장의 꽃잎 모양으로 만들어 붙인 뒤 1200도 가마에서 구워낸 수제(手製) 도자 그릇. 유약을 바른 그릇 안쪽은 회청색 빛을 띠며 매끄럽지만 바깥쪽은 흙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지녔다. ‘에르메스’와 ‘로얄 코펜하겐’ 서양 식기를 사러 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 그릇을 집어 들어 본다.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9층의 한국 그릇 편집매장 ‘한국의 미(美)’ 코너에 진열된 국내 생활도자 회사 ‘이도(李陶)’의 그릇이다. 신세계는 수입 도자기 선호 열풍 속에서 한국적 감성의 그릇을 소개하기 위해 2008년 9월 이 매장을 열었다. 여러 한국 그릇 브랜드 중 가장 인기가 높은 이도의 이윤신 대표(52)를 5일 만났다.
“TV 오락 프로에서 출연진이 냉장고를 열고 수납용기에 담긴 음식을 그대로 먹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겉모습은 명품으로 번지르르 꾸미면서 남들이 안 보는 데선 편안함만 추구한다면 품격이 없죠. 정성을 들여 만든 그릇의 품격은 곧 국민의 품격이니까요.”
국내 ‘생활도자 디자이너 1세대’인 이 씨는 홍익대 도예과와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원을 나와 20여 년간 국내 갤러리에서 그릇을 전시하고 팔았다. 서울 파크하얏트와 W호텔, 유명 식당들도 그의 그릇을 사용한다. 그런 그가 2004년 이도를 세운 뒤 ‘한국의 미’를 통해 대중 속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밥공기는 2만 원대, 큰 접시는 10만 원대. ‘명품 한국 그릇’을 찾는 고객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이 회사 연 매출은 10억 원대다.
작업실에서 하루에 100여 개를 손수 만드는 이 씨의 그릇은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백자는 ‘온유’, 옥빛 청자는 ‘청연’…. 쓰임새도 많다. 움푹 파인 조개 모양 그릇은 파티 때 샐러드를 담기에 제격이다. 꽃 모양 사발엔 컵케이크, 넓적한 그릇엔 파스타도 어울린다. “서양 그릇과 달리 한국의 그릇은 장식이 담담해 담기는 것들을 오롯이 주인 대접 하죠. 흰색 도자 접시는 욕실에서 타월을 말아 두거나 서재에서 색연필을 담아도 멋스럽답니다.”
그는 29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일반인 대상의 도예 아카데미와 신진 작가들의 생활도자를 소개하는 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 공간 이도’를 선보인다. 그는 “세상이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핸드 메이드’ 그릇에 마음을 붙이게 된다”며 “한식을 세계에 알리려면 한국 그릇에 음식을 아름답게 담는 방법을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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