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된 투자 목적은 韓 “돈 벌기 위해” 45% 美 “노후자금 마련” 76% 日 “돈 벌기 위해” 36%
“내가 해도 그보단 낫겠다 싶어 펀드에서 돈을 뺐지요. 펀드투자의 연간 기대수익률은 30% 정도? 나는 ‘합리적인 투자자’라 배로 튀기는 것 같은 대박을 바라진 않아요.”
최근 서울 강남구의 대우증권 지점에서 만난 40대 투자자의 말이다. 1년 기대수익률 30%라면 4%선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나 채권 수익률의 7배가 넘는다. 스스로를 합리적 투자자라고 한 건 본인의 ‘착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리 수준이라면 적정 기대수익률은 8∼10%”라고 설명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한국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대박을 바라고 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접투자상품인 펀드 운용의 결과는 가입을 권유한 판매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 등 투자 이해도가 여전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수익률이 확정된 상품은 단기로, 수익률 변동성이 큰 상품은 장기로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 투자의식이 개선된 측면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최근 대우 삼성 미래에셋 대신 동양 교보증권의 전국 지점에 계좌를 보유한 개인투자자 1000명을 대상으로 금융자산 운용에 대한 의식 조사를 했다. 이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와 함께 분석해 2001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조사한 미국과 일본의 투자의식과 비교했다. ○ 한국 투자자 대박 심리 여전
분석 결과,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때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연간 수익률은 20% 이상이 42.3%로 가장 많았다. 10% 이상(41.0%), 정기금리+α(8.8%), 5% 이상(5.2%)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수익률 기대치는 금융위기 이전보다는 약간 낮아진 것. 금융투자협회가 인터넷 재테크 카페 회원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7년 말에는 20%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한다는 응답이 48.3%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 투자자들이 여전히 대박을 꿈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펀드매니저계의 ‘전설’로 불리는 앤서니 볼턴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투자부문 대표가 28년간 거둔 연평균 수익률이 19.5%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기대수익률로 선진국 투자자들이 받아들이는 ‘금리+α’, 혹은 ‘채권 수익률의 2배’를 제시한다. 금리가 10%대로 높았던 시절에는 기대수익률이 20%를 넘어설 수도 있지만 현재는 8∼10%가 적정한 수준이라는 것.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은 “제로금리인 일본은 투자로 연 4∼5%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만족하겠다는 투자자 비율이 70%가 넘는다”고 전했다. 미국의 뱅가드 웰링턴, 매사추세츠인베스트먼트트러스트(MIT) 등 70∼80년 된 장수(長壽)펀드들의 설정일 이래 연평균 수익률은 8% 선이며 지금도 이 펀드들은 인기를 끌고 있다. ○ 금융투자지식 갈 길 멀어
“펀드 투자는 안 할 겁니다. 지금껏 결과가 좋지도 않았고 수익률을 맘대로 조작하지 않는지 어떻게 믿습니까.”
전문직에 종사하는 50대 후반의 남성 투자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이처럼 펀드운용사에 대한 한국 투자자의 불신은 여전히 높았지만 일본보다는 낮았다. ‘펀드는 금융전문가가 운용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투자자의 비중은 43.1%였다. 2001년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에서 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 비율은 미국이 60%, 일본은 25%였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은 “주가가 등락해도 언젠가는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장기 투자하는 미국과 주가가 오를 때 투자를 시작했다가 내릴 때 해지하는 한국, 일본의 투자 성향 차이”라고 분석했다.
또 한국 투자자의 11.0%는 ‘은행에서 가입한 펀드는 증권사에서 가입한 펀드와 달리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다’, 47.9%는 ‘펀드 판매를 권유한 사람도 투자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답해 사실과 정반대로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꼽혔다. 투자는 목적이 뚜렷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주된 목적’을 묻는 항목에 투자자의 45.0%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모호하게 답했다. 노후생활자금(12.0%) 주택자금(11.0%) 등의 분명한 목적은 뒤로 밀렸다. 반면 미국 투자자의 76.0%는 노후자금 마련을 첫 번째로 꼽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란 응답은 5.0%에 그쳤다.
‘펀드는 장기 보유하면 유리한 상품이다’라는 항목에 한국 투자자들은 62.9%가 그렇다고 답해 미국(90.0%)보다는 낮았지만 일본(40.0%)보다는 높았다. 강 소장은 “한국도 펀드가 대중화된 지 5년이 넘으면서 투자자들의 인식이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졌다”며 “하지만 일부 항목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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