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 전남 영암에서 열릴 예정인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에 참여하는 페라리, BMW 등 유명 레이싱팀 관계자들은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한국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자동차 불법 개조(튜닝)와 무허가 정비업소를 근절하겠다며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주변 레이싱팀과 자동차 정비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10여개 업소를 적발했고, 검찰이 이 사건을 송치 받아 처리 중이다.
법적으로 자동차로 볼 수 없는 전문 레이싱카까지 처음으로 단속의 대상이 됐다. 단속된 업소 중에는 불법을 저지른 곳도 있었지만 일부 레이싱팀은 경기용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걸려들었다.
사법당국은 레이싱카가 자동차로 등록되지 않아 번호판도 없고, 경기장만 달리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동차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엄연한 자동차라고 주장한다. 자동차관리법 2조 1항 ‘자동차란 원동기에 의하여 육상에서 이동할 목적으로 제작한 용구’에 해당한다는 법해석이다. 자동차경기장도 법에서 규정한 ‘육상’이라고 우기는 셈이다. 권투경기가 열리는 링 위도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니 시합에 참가한 선수를 폭행으로 입건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법당국은 자동차회사가 신차를 내놓을 때 안전도와 환경기준 준수를 보여주기 위해 수십억 원을 들여 자기인증을 하거나 성능시험연구소에서 인증을 거치는 것처럼 레이싱팀이 만드는 레이싱카에 대해서도 같은 인증과정을 거치라고 요구했다. 이런 논리라면 F1 레이싱카도 ‘육상’에 속하는 영암 경기장에서 달리기 때문에 자동차관리법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한국 기준에 맞는 충돌시험과 환경인증을 거쳤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사법처리돼야 법집행의 형평성에 맞다.
세계적으로 레이싱카의 제작에 일반 자동차 관련 법규를 적용하는 국가도, 격투기 시합에 참가한 선수를 폭행으로 사법처리한 국가도 없다. 레이싱이나 격투기는 합법이라고 법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경기에 임하는 상대방의 동의나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용인하는 것이다. 사법당국도 분명히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 무리한 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는 반도체 조선과 함께 한국을 먹여 살리는 3대 산업이다. 자동차 생산국 순위 5위까지 올랐다지만 레이싱이나 자동차튜닝과 관련된 인프라와 문화,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에서는 내수시장만 수조 원에다 수출을 합하면 10조 원 이상인 자동차튜닝산업이지만 국내에선 통계조차 없으며 많아야 2000억 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잘만 하면 수익구조 악화로 신음하는 자동차부품업계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정부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사법당국은 어이없는 법해석으로 목줄을 죄고 있다.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전남도는 F1을 계기로 영암에 튜닝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잘 살려 레이싱과 튜닝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자동차부품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기로 만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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