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간) 개막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채 걷히지 않은 가운데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희망을 모색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날 디트로이트 시내로 진입하는 간선도로 주변에선 개인파산 상담을 안내하는 옥외 광고판이 여럿 눈에 띄었다. 디트로이트 시 근처 트로이 시에 있는 소머셋 쇼핑몰 앞에선 종업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부도로 액세서리 제품을 최대 60%까지 할인해 준다는 입간판을 들고 운전자들을 맞았다.
풀리지 않은 지역경기를 반영하듯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신차(월드 프리미어) 수가 지난해 50개에서 41개로 줄었고, 빅3 중 크라이슬러는 마땅히 소개할 만한 신차가 없어 언론 설명회조차 열지 못했다. 하지만 참가 브랜드 수가 지난해 50개에서 61개로 늘어나는 등 절망 속에도 희망의 싹이 보였다.
○ ‘빅3’ 자존심 지킨 포드
특히 포드는 디트로이트 모터쇼 역사상 세 번째로 ‘올해의 차’와 ‘올해의 트럭’을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의 차를 수상한 포드의 퓨전 하이브리드는 신형 포커스와 함께 대표적인 C세그먼트(준중형차) 세단으로 손꼽힌다.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가 올해의 차에 뽑혔다. 포드는 지난해 빅3 중 유일하게 미국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제너럴모터스(GM)나 크라이슬러에 비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날 포드는 참가업체 가운데 가장 넓은 전시장(5만4000m²)을 확보하고, 가장 먼저 언론 설명회를 여는 등 자신감이 넘쳤다. 코보 아레나에서 열린 포드 언론 설명회는 수천 석에 이르는 대형 공연장에서 화려한 컴퓨터 영상과 음향으로 관객을 압도한 하나의 거대한 쇼였다. ○ 현대차 ‘소아암 환자 돕기’ 행사도
GM도 이날 모터쇼에서 GM대우자동차가 개발에 참여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라세티 프리미어, 차세대 글로벌 소형차(젠트라 후속모델) 등을 시보레 브랜드로 내놓고 GM 창립 이후 처음으로 경차 소형차 준중형차를 미국 시장에 한꺼번에 들여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인터뷰를 가진 팀 리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포드와 도요타, 현대차 등과 더불어 미국에서 중소형차의 시장 경쟁이 매우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미국차 브랜드 임원은 “현대차의 소형차 기술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빅3’까지 가세하면 앞으로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안심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날 현대차는 포드와 함께 코보 센터 한가운데에 전시장을 마련했다. 현대차 미국법인(HMA)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 딜러인 더그 폭스 씨가 이번 모터쇼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명당자리’에 전시장을 설치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현대차는 이번 모터쇼에서 ‘소아암 환자 돕기’ 행사를 벌이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 “인터넷이 車디자인까지 바꾸고 있다” ▼
메이스 포드 수석디자이너
“인터넷에 익숙한 세계의 18∼30세 젊은 고객들이 소통하면서 차량 디자인에 대한 반응도 비슷해졌습니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 미술관에서 만난 제이 메이스 포드 수석디자이너(디자인담당 부사장·사진)는 포드의 글로벌 플랫폼(차량의 뼈대) 통합으로 세계 각국에서 요구되는 디자인 특성이 무시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치 애플의 아이폰이 세계에서 똑같은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이어 “앞으로 전체 차량의 20%에 해당하는 픽업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미국 소비자 취향의 디자인을 유지하되 중소형차 위주의 나머지 차종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글로벌 디자인’을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자이너 관점에서 현대자동차의 신형 쏘나타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그는 “현대차로선 ‘큰 도전’이 될 것”이라며 “최근 현대차가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만 했다. 미국 태생인 메이스 수석디자이너는 폴크스바겐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세계적 히트작인 소형차 ‘뉴 비틀’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뉴 비틀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생산된 비틀(딱정벌레)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차량으로,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콘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자동차 디자인계에선 고전으로 회귀하는 ‘레트로 스타일’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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