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美 샤펜버거 초콜릿, 진정성으로 소비자 감동시켜”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 글렌 캐럴 교수가 분석한 ‘성공비결’

원료 선택-로스팅 등 모든 과정 가내수공업
원가는 올라가지만 고급제품 이미지 굳혀
대기업 외면한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 개척

글렌 캐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초콜릿 업체인 미국 샤펜버거가 허시, 마스, 네슬레 등 거대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조와 생산 판매 등 기업 활동의 전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글렌 캐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초콜릿 업체인 미국 샤펜버거가 허시, 마스, 네슬레 등 거대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제조와 생산 판매 등 기업 활동의 전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특정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신규 소비자를 발굴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미국의 초콜릿 시장이야말로 대표적인 ‘성숙 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허시(Hershey's)와 마스(Mars), 네슬레(Nestle) 등 거대 기업이 장악한 시장을 파고들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중견 기업이 있다. 프리미엄 초콜릿업체인 샤펜버거(Scharffen Berger)다. 대기업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이라는 ‘주변 영역’을 파고든 게 주효했다.

글렌 캐럴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부학장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교육과정인 ‘스탠퍼드 AMP’에서 샤펜버거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이를 요약해 소개한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초콜릿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려면 생산 설비를 늘리고, 집중적인 광고를 내보내며, 원가를 대폭 낮추는 일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당시 의사였던 로버트 스타인버그는 ‘미국에서는 왜 유럽의 고디바 같은 고급 초콜릿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허시와 네슬레 같은 대기업들은 다양한 초콜릿을 대량 생산해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가격은 대부분 10달러 이하였다. 2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다.

스타인버그는 의사 직을 포기하고 프랑스 리옹에 가서 현지 초콜릿 전문기업인 ‘베르나숑’에서 초콜릿 생산기법을 배웠다. ‘초콜릿 장인’이 된 그는 1997년 와인 사업자였던 친구 존 샤펜버거를 끌어들여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새 초콜릿업체가 등장한 건 5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국 프리미엄 초콜릿 업체인 샤펜버거의 다크 초콜릿. 사진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미국 프리미엄 초콜릿 업체인 샤펜버거의 다크 초콜릿. 사진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
샤펜버거는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콩 선택부터 콩 볶기(로스팅), 섞기(블렌딩) 등 초콜릿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하는 ‘가내(家內) 수공업’ 방식을 고수했다. 원가가 올라가지만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 유통업자나 중간 바이어를 통해 최대한 싼 가격에 원재료를 공급받는 대형 초콜릿 업체와 달리 이 회사는 베네수엘라, 가나 등 제3세계에서 원두를 직접 조달했다. 원두 종류에 따라 로스팅 과정을 엄격하게 분리했고 값비싼 독일제 장비를 썼다.

유통 방식도 달랐다. 설립 초기부터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고급 레스토랑과 제과점을 뚫는 데 주력했다. 미식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진지하고 전문적인 초콜릿 업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초콜릿의 형태도 바(bar) 모양의 다크 초콜릿만 주로 생산했다. 아무리 잘 팔려도 품질 유지를 위해 생산량을 늘리지 않았다.

샤펜버거 초콜릿의 고급스러운 맛과 향은 곧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고,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이 회사의 독특한 문화와 성장성을 눈여겨본 허시는 2005년 샤펜버거 매출의 5배를 주고 경영권을 사들였다. 허시가 미국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의 빠른 성장세를 뒤늦게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2005년 미국 전체 초콜릿 시장의 성장률은 2.5%에 불과했지만 프리미엄 초콜릿은 17%에 달했다.

샤펜버거는 소비자들에게 ‘진정성(authenticity) 을 인정받은 기업’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쌓았다. 진정성은 ‘정체성(identity)’의 한 형태로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브랜드는 회사가 통제할 수 있고, 사고팔 수 있으며, 규정하는 주체가 소비자일 때가 많다. 하지만 정체성은 회사가 통제할 수 없고 사고팔 수 없으며 소비자뿐 아니라 공급업체, 투자자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이 규정한다. 프리미엄 제품 시장, 특히 프리미엄 식품 시장에서는 진정성을 인정받는지 여부가 판매를 좌우한다. 초콜릿, 맥주, 와인, 예술 등 문화 상품에서는 비밀스러운 기법을 가진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 소비자들은 생산자가 지닌 진정성을 품질, 세련미와 동일하게 여긴다. 또 자신이 이 제품을 소비하며 신분이 높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성숙 시장에서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회사라면 고유의 정체성 확립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이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9호(1월 15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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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vard Business Review/ Breakthrough Ideas for 2010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매년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10개의 참신한 솔루션을 제안한다. DBR는 HBR 1월호에 실린 ‘Breakthrough Ideas for 2010’을 전문 번역했다. 생산성 향상, 국가 건립, 건강관리, 해킹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신규 사업 발굴과 성장동력 탐색을 고민하고 있다면 HBR가 선정한 2010년 최고의 혁신 아이디어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 Knowledge @ Wharton/ 다양성의 해악과 미덕
고를 수 있는 제품의 수가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제품을 택한다. 일례로 하나의 과자와 하나의 과일을 주고 한 가지만 고르라고 했을 때보다 여러 개의 과자와 과일을 제시하고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했을 때 과일을 고르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 현상을 적절히 이용하면 건강 관련 제품이나 식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다.

▼ 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일사불란한 조직의 치명적 위험
조직 구성원 간 갈등이 거의 없는, 일사불란한 응집력을 가진 조직이 더 좋은 성과를 낼까? 일사불란한 조직은 환경 변화가 심하지 않을 때 강한 실행력을 발휘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비합리적인 결정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져 치명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경영자들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상관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반대 의견을 포용해야 한다.

▼ strategy+business/ 21세기 인재 경영 방식 확 바꿔라
21세기 기업의 인재 관리 모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현재 세계 대부분의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인재 관리 모델은 조직원들의 인구 구조 변화나 성별, 국적, 문화의 다양성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 지멘스, 타임워너 등은 인구 구조 변화, 조직 내 구성원들의 다양성, 개인적 특성 등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인재 관리 모델을 개발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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