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가문과 아무 연고 없지만 17년째 대표이사 ‘장수 CEO’
“힘들때 한발 더 뛰면 효과 곱절… CEO, 미래-현실 타협점 찾아야”
최양하 한샘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이라고 평하지만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편안했다. 대화 중간에 유머를 섞는 여유도 있었다. 임직원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격의 없고 소탈하게 대한다고 한다. 주부들의 마음을 읽는 인테리어 사업에 30년 넘게 몸담아서인지 입가와 눈가에는 부드러운 미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원대연 기자
국내 인테리어가구 업계 1위인 한샘은 작년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2002년 이후 줄곧 4000억 원 후반대에 머물던 회사 매출이 지난해 54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부엌가구 인테리어키친(IK) 부문이 비약적으로 신장했고 온라인 매출이 확대되는 등 유통 채널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성공을 뒷받침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가구업계도 진통을 겪고 있지만 한샘은 올해도 10∼20% 매출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가구 제조업으로 한샘의 이름을 알렸다면 이제 가구뿐 아니라 주거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샘’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유통업으로 비즈니스 플랫폼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한샘의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61)을 13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샘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최 회장은 1994년부터 17년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34년 샐러리맨 인생 가운데 절반을 최고경영자(CEO)로 살아온 셈이다.
○ ‘CEO, 미래-현실 타협점 찾는 역할’
최 회장은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과장으로 한샘에 입사해 회장까지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1970년 한샘을 창업한 조창걸 명예회장은 1994년 최 회장을 대표이사 전무로 임명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최 회장은 조 명예회장에 대해 “누구보다 한발 앞서 내다보는 경영자”라고 말했다.
“저는 지극히 현실적이죠. 당장 눈앞에 산적한 일부터 보이지만 명예회장님은 한샘의 10년, 20년 후 모습을 그리십니다. CEO의 역할이란 오너가 그리는 미래와 회사의 현실 간 타협점을 찾아가는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회장은 조 명예회장과 아무런 연고가 없다. 단지 열심히 일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장수 CEO가 된 비결이다. 그는 1980년대 초 공장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1980년대 말 영업이사였을 때 부엌가구 부문 매출을 업계 1위로 끌어올렸다. 지금의 한샘이 있기까지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의 역량을 보여줬다.
“사실 모두가 힘들 때만큼 사업하기 쉬운 때는 없어요. 남들보다 한 발짝만 더 뛰면 그 효과가 배가 되거든요.”
대표이사 전무에서 사장으로 부임한 1997년에는 외환위기 극복과 인테리어 사업 진출이라는 두 가지 당면과제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부엌가구 하나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에 이르렀던 때라 신사업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국내 부엌가구 점유율 1위라는 찬사는 그에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 조 명예회장의 신임도 최 회장이 공격 경영을 펼치는 데 큰 힘이 됐다. 오히려 그때 위기가 지금의 한샘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 새벽 워킹으로 하루를 시작
최 회장은 작년부터 집 근처 양재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1시간 30분가량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 출근 채비를 갖춘 후 서초구 방배동 사무실로 나오는 시간은 오전 7시. 61세 나이를 생각하면 무리한 일정 아니냐고 묻자 최 회장은 “새벽에 걷는 동안이 하루 일과 중 유일하게 나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 무엇보다 고마운 사람은 아내”라고 했다. 회사일로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한마디 불평 없이 집안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진 아내에게 가장 큰 빚을 지면서 산 셈이라고 말한다. 가급적 주말을 아내와 함께하면서 골프와도 멀어지게 됐다. 주말에 회사 임직원들과 산에 오르는 것도 즐거움이다. 한샘에서는 매년 공채 신입사원 입문교육 일정의 마지막을 태백산 야간 등반으로 마무리한다. 작년 10월에는 회사 매출 신기록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전 직원이 청계산에 올라 자축하기도 했다.
○ “나는 행복한 샐러리맨”
최 회장의 큰아들은 몇 해 전 자기 사업을 한다며 직장생활을 접었다. 평생을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최 회장으로서는 아들의 사업을 말렸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사실 사업이라는 게 쉽지 않죠. 자기 사업을 할 만큼의 열정을 회사에 쏟아 붓는다면 더 큰 보상이 따라올 수 있죠. 저 역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기서 내 꿈을 펼치면 되지’라고 타협했죠.”
자신을 ‘행복한 샐러리맨’이라고 말하는 최 회장은 현장을 가장 중시한다. 대리점과 직영점, 인테리어 제휴업체, 공장을 수시로 방문하는 것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에 있는 법인도 분기마다 한 번씩은 찾는다. 전 임직원이 현장경영에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올해부터는 매주 금요일을 ‘현장경영의 날’로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입사할 때 ‘내가 한샘을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아직 한샘의 매출은 1조 원에도 못 미칩니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집을 고친 후 새 가구를 들여놓기 위해 한샘 매장을 찾지만, 앞으로는 집을 고치기 위해 한샘 매장을 찾게 할 생각입니다. 주거문화기업 한샘을 만드는 것이 저의 남은 과제입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최양하 회장은 ▼
△1949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1976년 대우중공업 입사 △1979년 한샘 입사 △1983년 한샘 공장장 △1989년 한샘 상무 △1994년 한샘 대표이사 전무 △1997년 한샘 대표이사 사장 △2004년 한샘 대표이사 부회장 △2010년 1월∼ 한샘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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