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4일 뉴욕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50곳에 ‘금융위기 책임비용’을 물리겠다고 밝혔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7000억 달러 중 손실이 예상되는 1170억 달러를 세금을 매겨 걷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강경한 태도로 공적자금 회수에 나선 것을 계기로 한국도 앞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는 회수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미국 “기간 연장해서라도 전액 회수”
2008년 가을 미국 의회에서는 7000억 달러에 이르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당시 의회는 정부에 2013년까지 나랏빚을 늘리지 않고 이 돈을 메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최근 월가에서 다시 보너스 잔치가 벌어지자 정부가 시한을 앞당겨 회수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형 금융회사들은 총자산에서 기본 자본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 예금을 제외한 금액의 0.15%를 매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미 정부는 이를 통해 10년간 900억 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년 후에도 국민의 혈세(血稅)가 다 회수되지 않으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전액 돌려받을 방침이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부실 저축대부조합(S&L) 처리를 위해 구조조정 자금 1457억 달러를 투입했다가 80%를 회수하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과거 공적자금을 투입한 저축은행이 대거 도산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금융회사들이 대부분 회생한 데다 임원들에게 대규모 보너스를 줄 정도로 여유도 생겼다”며 “이처럼 상황이 다른 것도 미국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은 회수율 56.3% 그쳐
반면 한국은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 원금의 절반 남짓 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1997년부터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모두 168조6000억 원이며 이 중에서 지난해 10월까지 회수한 돈은 94조9000억 원(56.3%)에 불과하다. 그동안 낸 정부보증 채권 이자만 59조2000억 원에 이른다.
금융위 관계자는 “퇴출한 금융회사에 출연했거나 대신 예금을 지급한 경우, 또 자본 확충을 위해 출자했지만 감자(減資)된 경우에는 거의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7년 기준으로 가진 자산을 모두 팔더라도 49조9000억 원의 손실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14조8000억 원은 금융권에서 부담하지만 35조1000억 원은 별 수 없이 국민의 돈으로 충당해야 한다.
물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만 보면 한국은 다소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정부는 지난해 40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했지만 실제 매입한 부실채권 매입 규모는 9066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이 돈을 내 20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만들고 은행들의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지만 경기가 회복돼 실제 매입 규모는 3조9560억 원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당시 1998년 한 해에만 공적자금 55조6000억 원을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관계자는 “부실채권을 싸게 샀기 때문에 손실은 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자본확충펀드도 손실 우려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조조정기금 조성 법안에 미국처럼 공적자금 회수 방안을 담지 않아 자칫 경기가 악화되면 손실이 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릉원주대 안택식 교수(법학)는 “자산을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매각해 돈을 회수하는 한편 앞으로는 공적자금을 지원할 때 철저한 회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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