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항공기엔진 제조회사인 롤스로이스는 2008년 민간 항공기엔진 부문 매출액(45억 파운드·약 8조4000억 원) 중 서비스 매출이 61%인 27억2600만 파운드(약 5조1000억 원)에 달했다. 이는 롤스로이스가 단순히 항공기엔진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토털 케어’ 서비스를 내세워 전 세계에 판매한 8300여 개 엔진의 성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히 대처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이로써 매출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엔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안정적인 서비스 매출을 보장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산업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 서비스업이 ‘융합’돼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 국내서도 성공 사례 많아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기아자동차는 2007년 ‘블루멤버스’라는 고객 서비스를 내놓았다. 현대·기아차를 구입한 뒤 블루멤버스에 가입하면 정기 점검, 무상 케어, 긴급출동, 견인 등 자동차 관련 서비스는 물론이고 여행 정보, 렌터카 서비스, 할인마트 포인트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LG생활건강은 자사 화장품을 이용해 부위별로 마사지를 해주는 ‘후 스파팰리스’를 열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제품을 직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홍보 효과와 함께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또 건물 내에 회의 공간을 마련해 제공하거나 음악회 등을 열어 고객관리에 활용한다.
장난감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잠깐 동안만 사용한다. e-토이월드는 이에 착안해 장난감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장난감 대여 서비스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친환경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가구제조업체인 한샘은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와 취향에 맞춰 부엌가구를 맞춤형으로 제작해 공급했다. 붙박이장이 늘어나는 등 시장 변화로 가구시장이 침체하자 한샘은 집의 구조와 가족의 구성, 생활 패턴 등을 고려한 인테리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업 구조를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가구회사들이 줄줄이 부도난 최근 10여 년 동안 한샘은 성장을 지속했으며 브랜드 부엌가구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밖에 한국타이어의 티스테이션도 단순히 타이어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지, 관리서비스를 제공해 이윤을 늘리면서 1100여 개의 일자리도 만들었다.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서 에어컨만 팔다가 지금은 토털 온냉방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제조업의 서비스화로 돌파구
고려대 홍세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제조업의 마진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며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그런 맥락에서 꼭 필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제품의 내구성이 좋아져 교체 주기가 길어졌고, 많은 소비재 시장이 포화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제품만으로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는 것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체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부각됐다.
제조업의 서비스화는 제조기업의 가치사슬(기획, 디자인, 생산, 마케팅, 유통, 고객서비스)에서 서비스의 비중을 높이거나 사업영역을 서비스 분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최근 발간한 ‘제조업의 서비스화 국내외 사례 발굴·분석’에서 △수익 창출의 다변화 △이윤 창출의 다른 기회 △고객 충성심 제고 △환경문제 해결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대부분 제조업체는 연구개발, 디자인, 자재 구매 단계에서 자금을 투입하고,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낸다. 제조업에 서비스를 접목하면 수익구조가 다변화돼 위험요인(리스크)이 분산되는 장점이 있다. 또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면 단순히 제품만 팔 때보다 고객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이 때문에 고객 충성을 이끌어내고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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