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동안 10명 방문 그나마 8명은 퇴짜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1월 30일 03시 00분


‘신용회복기금 7000억’ 마련한 지 500여일
5000억이 금고서 쿨쿨 ‘용두사미’ 왜

6개월 연체 없어야 저리전환… 급전 쓰는 서민층엔 먼 얘기
채무재조정도 목표의 10%…“제도 첫단추부터 잘못” 지적

썰렁한 상담창구
26일 기자가 찾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본관 1층 서민금융지원센터는 오후 내내 한산했다. 이날 오후 전환대출 상담을 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사람은 10명이었지만 그중 8명은 자격요건 미비 등으로 신청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김재명 기자
썰렁한 상담창구
26일 기자가 찾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본관 1층 서민금융지원센터는 오후 내내 한산했다. 이날 오후 전환대출 상담을 하기 위해 센터를 찾은 사람은 10명이었지만 그중 8명은 자격요건 미비 등으로 신청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김재명 기자
26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본관 1층 서민금융지원센터 전환대출 코너에는 상담원 5명이 무료한 표정으로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여기선 대부업체에서 빌린 최고 연 49%의 채무를 신용회복기금의 보증을 통해 연 12%의 은행 대출로 바꿔준다. 1000만 원을 빌렸을 때 매달 내는 이자를 40만8000원에서 10만 원으로 깎아 주는 파격적인 혜택이지만 정작 신청하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사무실에는 정적만 흘렀다.

2, 3분 후 문이 열리며 50대 부부와 대학생 딸이 들어왔다. 번호표를 뽑은 뒤 상담석에 앉은 딸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이 있는데 은행권 대출로 전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신용조회를 마친 상담원은 “지난해 11월 말 냈어야 할 학자금 대출 이자 2만 원을 내지 않아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자는 부인과 딸에게 “왜 제때 이자를 안 냈느냐”고 소리쳤고, 이들은 들어온 지 10분 만에 서로 다투며 문을 나섰다.

이날 기자가 관찰한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상담을 받으러 전환대출 코너를 찾은 사람은 10명뿐이었다. 이 중 2명만 신청에 성공했는데 그중 1명은 지난해 11월 이곳을 찾았다 퇴짜를 맞고 자격을 갖춰 다시 찾은 경우였다.

전환대출을 받으면 한 달에 이자비용을 수십만 원 낮출 수 있고 채무재조정을 받으면 아예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이 이곳을 찾지 않는 것일까.

○ 서민의 현실을 모르는 규정

전환대출 실적이 부진한 것은 문턱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정부와 캠코는 2008년 12월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용등급이 7∼10등급이고 △연 이자가 30%를 넘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면서 △이를 6개월 이상 연체하지 않고 성실히 갚고 있을 때만 신청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연 30% 이상의 이자를 내면서 연체 없이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연체가 있으면 전환이 안 되다 보니 신용등급 9, 10등급은 대부분 처음부터 대상에서 탈락한다.

신용등급이 높아도 안 된다. 한 상담원은 “금융거래가 없던 사람이 처음 돈을 빌리면 5, 6등급이라서 대상이 안 된다”며 “편법이지만 카드를 단시간에 많이 발급받아 일부러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뒤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캠코는 수차례에 걸쳐 △전환 대상 금리를 연 30% 이상에서 연 20% 이상으로 낮추고 △전환 후 금리를 연 20%에서 연 12%로 내리고 △보증 비율을 50∼90%에서 100%로 높이고 △상환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신청 가능한 신용등급을 ‘7등급 이하’에서 ‘6등급 이하’로 확대했다.

하지만 아직도 10명 중 8명이 발길을 돌린다. 부실채권정리기금에서 7000억 원을 출연해 만든 기금도 약 5000억 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용불량자 720만 명 대(大)사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출발만 요란하고 성과 없는 전시행정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보 부족도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민금융 사업을 시작하면 새 제도를 이용할 때 얼마나 유리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반복해 홍보하고 수기집도 발간하는 것이 보통인데 캠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은행 못 가는 저소득층으로 확대를

신용회복기금은 출범 후 연체자의 채무를 조정하기 위해 금융회사에서 3개월 이상, 3000만 원 이하를 연체한 65만 명의 채권을 사들였다. 그리고 이들 중 신청자에 한해 이자를 감면하고 원금을 최대 8년까지 나눠서 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채무를 조정한 채권은 매입분의 10%에도 못 미쳤다. 결국 캠코는 지난해 말 대상을 확대하고 추가로 15만 명의 채권을 사들였다.

채무재조정 신청자가 정부 예상보다 적은 것은 채무재조정을 받으면 원금 탕감 또는 감면이 안 된다는 점 때문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본인이 감당하기에 빚이 많은 사람은 채무조정보다 파산이 유리하기 때문에 신용회복기금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많거나 재활의지를 잃어버린 서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활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공짜로 돈을 나눠줄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지원 대상을 금융회사에 진 빚을 못 갚아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으로 한정하지 말고, 현재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들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은행 거래 실적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신용등급이 괜찮더라도 담보가 없거나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힘들다. 서민금융지원센터에서 만난 보험설계사 김모 씨(31·여)는 “고정급을 받지 않는 직종이다 보니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며 “생활비가 필요할 때 캐피털, 카드론 등을 쓰다 보니 어느새 빚이 1438만 원이나 됐고 신용등급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시작한 미소금융은 자영업자를 위한 창업 및 시설·운영 자금만 빌려주기 때문에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병원비 등 저소득층 근로자가 긴급히 필요한 생활자금을 빌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최종 수요자인 서민들의 신용상태와 자활능력에 대해 잘 모르는 금융위와 캠코가 제도를 만들다 보니 타깃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기금 집행을 신용회복위원회 등 서민금융 전문가 집단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처음 설정한 목표가 다소 과장됐던 것 같다. 샘플조사 등을 통해 이유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최연진 인턴기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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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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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1-30 11:24:55

    마지 못해 나선 기업들이 진정으로 하겠나?.처음부터 정부의 생색내기 이벤트라는 것을 모르고 찾아간 사람들이 불찰이지.앞으로는 무슨 이벤트를 하시려나

  • 2010-01-30 13:36:33

    전시행정이다 국민들이 정말 급할때 찾아갈수 있는 곳이 아니다 책상행정이 빚은결과이다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이용자가 몇명인지도 모른채 조건만 내세우고 있다 그런 전시행정을 해온 이들이 급한 사람들의 마음을 알리가없다 악의 순환이 거듭될수 밖에는 없다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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