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파열음’ 한국에 새 악재… 선제 대응책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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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 美-中경제전쟁 전방위 확산… 한국에 미칠 영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지형이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G2(주요 2개국)’ 시대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무리한 차입 투자, 분에 넘치는 소비로 위기를 자초한 미국은 이제 막 응급실을 벗어났다. 반면 중국의 약진은 무섭다.

세계 1위의 외환보유액을 무기로 인근 아시아는 물론이고 멀리 중남미와 아프리카까지 품에 안았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던 힘의 균형이 조정되면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급격히 발전한 경제관계로 ‘차이메리카(China+America)’ 시대를 구가하던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도 확전 일로에 있다. 특히 새해 들어 양국의 갈등은 경제를 비롯해 군사 외교 인권에 이어 인터넷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제 막 회복의 길에 들어선 세계 경제다. 출구전략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글로벌 리더십의 균열은 자칫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양국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에 큰 충격파가 밀어닥칠 수 있다. G2체제에 파열음이 생길 때 한국에 어떤 영향이 올지 점검해본다.》

금융위기 거치며 美-中 경제불균형 심화
보호무역 장벽 높아져… 한국피해 가시화


지난해 10월 30일. 미국은 중국산 철강 파이프에 반덤핑 조사를 결정했다. 3억8200만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철강 파이프에 100∼15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 중국도 발끈했다. 곧바로 나일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미국산 아디프산에 35.4%의 관세를 부과했다. 양국의 관세 보복은 미중 통상무역공동위원회 회담에서 상대국에 대한 보호무역 장벽을 낮추기로 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미중 무역 갈등은 전면전으로 확대되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2년간 미국이 시장보호를 위해 부과한 반덤핑 관세의 90% 이상이 중국 제품이다. 반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이 제소한 6건의 소송 중 5건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철강과 자동차, 타이어는 물론 건축자재와 식료품까지 분쟁대상이 확대됐다.

분쟁의 배경에는 무역 불균형이 있다. 중국이 값싼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면 미국이 소비하는 구조가 오래 지속되면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무역국이 된 반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무역분쟁이 ‘보호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눈앞으로 다가온 출구전략이 경기둔화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고 미국은 약(弱)달러 정책에도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시름이 깊다. 정부 조달 시장에서 자국 제품의 소비를 의무화하는 ‘바이차이나’ ‘바이아메리칸’과 같은 보호주의 정책을 다시 들고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불균형이 강화되면서 양국이 주요 수출품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 올해 양국 간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분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두 나라의 무역 분쟁으로 섬유와 파이프 등 중국과 경쟁하는 일부 한국기업의 대미(對美)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미국과 중국이 수입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에 휩쓸려 애꿎게 피해를 볼 여지가 더 크다.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한국기업이 피해를 보거나 양국이 서로를 겨냥한 무역규제의 올가미를 한국에도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미국산 아디프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지 하루 만에 한국산 아디프산에도 같은 세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또 중국에서 타이어를 생산하던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미국이 중국산 타이어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자 급히 미국에 수출하던 중국산 타이어를 한국산으로 바꾸기도 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거세지는 보호무역주의 한파에 대처하기 위해선 무역장벽 강화 가능 품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주도를 해 보호무역 확산 완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화 절상을” vs “달러 기축통화 도전”
달러화 쏠림 탈피 외환보유 다변화 필요


미국과 중국의 ‘기축통화 전쟁’도 올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올해 국제무대를 통해 달러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격전지는 6월 캐나다와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꼽힌다. 중국은 지난해 G20 회의에서도 기축통화를 달러화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지난해부터 동남아시아 10여 개국과 무역거래를 할 때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변국을 중심으로 위안화 경제권을 만들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약(弱)달러 정책이 중국이 달러 흔들기에 나선 원인이다. 다른 나라는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힘들게 일을 해서 무역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지만 기축통화 국가인 미국은 그냥 달러를 찍어내 다른 나라의 물건을 사오면 된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누적 재정적자 규모는 9조 달러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은 낮아진 달러 가치로 가만히 앉아서 큰 손해를 보게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 올해 “미국 국채를 팔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에 재정적자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팔면 미국은 채권 발행을 통해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경기회복을 위한 자금 마련이 어렵다. 달러화 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며 맞불을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08년 9월 이후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미국 달러화에 위안화를 고정하는 페그제를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도 중국의 환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27일부터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도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미국, 유럽의 압력과 중국의 버티기가 반복됐다.

전문가들은 미중 간에 벌어질 기축통화 전쟁에 대한 한국의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 2542억5000만 달러 가운데 64.5%가 달러 표시 자산으로 대부분이 미국 국채에 투자돼 있다. 중국의 채권 매도 등 기축통화 흔들기로 달러 가치가 낮아질 경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질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겪은 것처럼 한국은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 중 하나다.

달러화 하락은 미국 시장의 축소 및 원화가치 상승을 불러와 수출 경쟁력에도 큰 타격을 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수출시장 다변화를 더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보유액 다변화도 필요하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경우에 보유 외환의 가치가 감소하고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환율 전쟁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며 “금을 비롯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표시 자산 비중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中 자원확보 공세, 美세계전략과 마찰
양국 물량공세 맞서 틈새시장 공략해야


자원 헤게모니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외교·군사 분쟁으로 이어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동안 미국은 군사력 및 외교력을 바탕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 산유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며 세계 자원시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의 자원시장 독점을 견제하고 나섰다. 자원부국에 각종 지원을 대폭 늘리면서 해외자원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 실제 2005∼2009년 중국이 해외에서 인수한 기업 4분의 1이 원유나 광물을 비롯한 자원관련 기업이다. 최근엔 해외자원 확보를 위해 막대한 외환을 들여 ‘해외자원개발 지원기금’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를 들고 있지 말고 자원을 사들이자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직 해외자원 확보를 둘러싼 양국의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부터 앞마당인 중남미와 캐나다 등지에 진출하는 중국을 직접 견제하는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순방에 나서며 중국이 수년 전부터 공들이고 있는 아프리카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이 이란, 수단과 중남미 등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와 자원개발을 위한 우호 관계를 확대해나가면서 중국의 자원 확보 전략이 미국 외교 정책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당장 4월로 예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의에서 핵개발에 나선 이란에 제재를 가하려는 미국과 이를 막으려는 중국 간의 마찰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자원갈등은 한국의 입지를 좁히는 악재로 작용한다. 두 강대국의 싸움으로 한국의 자원외교는 날개도 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지난해에도 한국은 캐나다와 스위스의 자원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중국의 견제로 실패했다. 공적개발원조(ODA)를 무기로 한 아프리카 자원외교도 중국과 미국의 물량공세에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금력으로 미국, 중국과 경쟁해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자원 보유국이 원하는 기술과 개발경험 전수로 자원을 확보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 확산, 대테러 전쟁 등 미국의 외교 전략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한국에는 부담이다.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지지를 희망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한국으로선 거절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에 눈치가 보여 미국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도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중국이 이란, 아프리카, 중남미의 해외자원을 주로 공략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양국 간 마찰이 자칫 동북아 정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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