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음식만 일류 대접 해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탈출 못해
술-그릇 모두 고급화시켜야… 막걸리잔 직접 디자인해 빚어
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62)은 지난달 28일 기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 음식과 술에 관해 유달리 저렴한 가격을 주장하는 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 그는 다음 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광주요 사옥을 100억 원대에 매각하고 이사 온 양재동 본사는 9층 건물 중 7층 한 개 층을 임대로 쓰고 있었다. 2년 전만 해도 100여 명이던 이 회사 본사 직원은 27명으로 줄었다. 수수한 회사 잠바 차림의 조 회장은 “사옥 팔고 감원해 빚을 해결했으니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광주요 그룹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고급 한식의 뼈저린 실패
6남매 중 막내인 조 회장은 1963년 부친 고 조소수 씨가 경기 이천시에서 창업한 광주요를 1988년 물려받아 국내 굴지의 도자 기업으로 키워냈다. 2003년 11월엔 강남구 신사동에 고급 한정식당 ‘가온’을 차렸다. 밑반찬에서 주 메뉴까지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 광주요의 고급 도자기에 담아낸 ‘명품 한식’이었다. 당시 조 회장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프랑스에 푸아그라(거위 간), 중국에 불도장이 있다면 한국엔 홍계탕이 있습니다. 한식을 고급 음식으로 키우기 위해 옛 궁중 음식을 명품 한식으로 개발했죠.” 한 그릇에 10만∼30만 원이던 홍계탕엔 홍삼, 오골계, 전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조 회장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온은 매달 2억 원 이상 적자를 내다가 결국 2008년 12월 폐업했다. 일본에서 고교,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코스모폴리탄’ 조 회장은 이 대목에서 역시나 할 말이 많았다.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은 음식이든 그릇이든 만드는 기능인을 천대했습니다. 이 의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상류층은 외국 음식만 고급으로 치고, 서민들은 한식을 집에서 먹는 음식으로 치부해 버리니 이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앞장서 한식을 고급화하면 남들(손님들)도 따라올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착각이요,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 다시 시작하는 ‘한식의 세계화’
조 회장은 주저앉지 않았다. 지난해 현장경영으로 복귀해 몸소 강도 센 구조조정을 했다. 지난달엔 2005년 내놓았던 고급 증류식 소주인 ‘화요’(알코올 도수 41도, 25도, 17도 세 종류)의 병 디자인을 새롭게 바꿨다. 원통의 병 형태와 ‘화요’의 서체가 모두 힘 있다. 41도 화요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의 만찬 테이블에 칵테일 형태로 올랐다. 조 회장은 “한식이 고급으로 인정받으려면 함께 곁들이는 술과 그릇이 모두 고급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광주요 그릇을 ‘클래식 라인’과 ‘모던 라인’으로 분류해 내놓을 예정인 그는 미국 내파밸리의 프랑스 식당 수석 조리장인 한국계 미국인 코리 리 씨가 쓸 ‘코리 리 라인’도 만들었다. 최근엔 소주잔과 막걸리 잔도 직접 디자인해 공장에서 구워냈다.
와인잔을 닮은 흰색 막걸리 잔 속엔 도자 볼이 들어 있어 잔을 가볍게 흔들 때마다 ‘젱그렁’ 청명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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