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 펀드이동제가 몰고온 ‘고객 빼앗기’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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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증권사에 위기이자 기회… 편법보다 서비스 개선을

은행, 보험사, 증권사에서 가입한 펀드를 다른 판매사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펀드판매사 이동제가 실시된 지 열흘 정도 지났습니다. 3일 현재 펀드이동 액수는 385억 원, 이동 건수는 1961건입니다. 지금껏 펀드에 가입한 뒤 제대로 된 사후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는 투자자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지만 업계에서는 고객확보 경쟁이 불을 뿜습니다.

새로 생긴 작은 증권사에는 다른 증권사에서 옮겨온 경력직 프라이빗뱅커(PB)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이전 직장에서 관리하던 고객들을 집중 공략합니다. 고객이 응낙하면 직접 ‘모시고’ 다른 판매사 지점까지 가서 펀드이동 신청 수발을 듭니다.

큰 증권사나 은행들도 손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고객이 펀드를 옮기겠다고 하면 “왜 옮기려고 하느냐” “뭐가 불만이냐” 등을 연이어 묻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상담 시간을 끕니다. 시간이 돈인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은 늘어지는 상담에 짜증을 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일부 은행은 “원래 펀드에 가입한 지점에 가야만 계좌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며 버티기도 합니다.

금융감독원은 애초 온라인으로도 계좌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아예 온라인 발급을 막아버렸습니다. 금감원은 부랴부랴 3일 은행과 증권사에 “하루빨리 인터넷 출력시스템을 갖추고 어느 지점을 가도 계좌확인서를 발급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펀드판매사 이동제는 금융회사들에 기회인 동시에 위기입니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공모펀드의 순자산액이 214조 원이니 판매보수만 약 1조 원에 이릅니다. 펀드이동으로 판매보수 시장이 새로 열린 셈입니다. 애초에 고객이 많은 금융회사들은 고객을 뺏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편법으로라도 막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제도 시행 초기에 생길 수 있는 ‘해프닝’에 그쳐야 할 것입니다. 펀드판매사 이동제 시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서비스 개선 및 판매보수 인하로 경쟁해야지 편법을 쓴다고 효과가 있을까요.

증권가에서는 벌써 기발한 서비스 개선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IBK투자증권은 국내 펀드를 해지하면 환매금액이 확정되는 대로 고객에게 돈을 먼저 내주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환매 신청한 뒤 3, 4영업일째에 돈을 줍니다. 이형승 사장은 “고객이 찾은 돈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진 않을 테니 다른 상품에라도 유치해 보자는 것”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삼성증권도 국내외 펀드 환매 때 자사의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면 돈을 미리 줍니다. 대신증권은 고객이 여러 금융회사에서 가입한 펀드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해주는 ‘펀드 투자건강 서비스’를, 우리투자증권은 운전자에게 길을 알려주듯 자산관리의 길을 인도하는 ‘펀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증권업계가 선의의 경쟁을 벌여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하임숙 경제부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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