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에 빠진 은행원 임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연봉은 억대 육박… 생산성은 美의 3분의 2

정부 “국민소득 대비 美의 2.3배” 삭감 압박
노조 “업무량 비해 높지않다” 되레 인상 요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은행 임직원에 대한 과도한 보상체계를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시중은행 임직원의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보고 임금 인상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4일 “상당수 은행들은 공적자금 성격이 강한 정부의 지급보증과 유동성 공급 등 국민 부담 덕택에 금융위기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장기적인 수익성을 낙관하기 힘든 만큼 과도하게 높아진 연봉을 낮춰 인건비를 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2008년 말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당국의 연봉 삭감 압박에 대해 은행원들은 “업무량이나 스트레스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임금은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 정규직 행원의 급여는 은행마다 차이가 있지만 연평균 7000만∼1억 원 수준이며 여기에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더하면 평균 급여가 대부분 1억 원에 육박하거나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복리후생비용 포함하면 실제 급여 훨씬 높아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3분기 한국 금융보험업 근로자 임금은 연평균 4667만7972원. 지난해 11월 평균 원-달러 환율 1164원을 적용하면 4만101달러로 미국 예금신용기관 종사자들의 평균 임금 4만4350달러(2008년 5월)의 90% 수준이다. 200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9231달러로 미국(4만7556달러)의 4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금융업 종사자들은 국민소득 대비 미국보다 2.3배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정규직 은행원의 소득은 이보다 훨씬 높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8년 은행권 남자 직원 평균임금은 국민 6700만 원, 신한 6930만 원, 우리 6817만 원, 하나은행 7000만 원 수준이며 외환은행은 9892만 원으로 1억 원에 육박했다. 여성을 포함한 전체 직원 평균 연봉은 4600만∼7200만 원으로 남자 평균보다 낮지만 비정규직이 대부분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남자 평균연봉은 정규직 평균과 대체로 비슷하다.

이 급여는 대부분 식사 교통 자기계발 등의 명목으로 나오는 ‘급여성 복리후생비용’을 뺀 금액으로 이를 포함하면 실제 급여는 훨씬 높아진다. 국민은행은 2007년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남자 1인당 평균 급여가 8540만 원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고액 연봉’ 논란이 일자 2008년 공시부터는 슬그머니 복리후생비를 뺐고 평균급여는 6700만 원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 은행원 연봉이 높아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 해외 매각 등으로 뚜렷한 주인이 없어지면서 경영진과 노조가 합심해 보수를 올린 영향도 있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은 임원에게는 대규모 스톡옵션을 주고 직원들의 급여수준은 시중은행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시중은행 임원을 지낸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은 국내 화이트칼라 노동자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노조를 갖고 있다”며 “단체협상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은 전체 임금의 4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임금인상폭이 3%라 하더라도 복리후생비를 크게 올리는 방식을 택하면 실제 받는 급여는 이보다 훨씬 많이 오른다”고 설명했다.

○ 정부 ‘임금 인하’ 압박에 은행원들 반발

급여와 달리 국내 은행의 생산성은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국생산성본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분석해 작성한 ‘생산성 국제비교’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금융보험업 생산성이 100이라면 미국은 155.2다. 미국 금융업 종사자의 생산성이 한국보다 50% 이상 높다는 뜻이다.

2008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세금으로 혜택을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정부 지원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발언이 나온 뒤 국책은행 임원들의 연봉이 삭감됐고, 시중은행 임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연봉을 삭감하거나 반납했다. 이어 지난해 은행권 임금단체협상에서 정부는 국책은행에 임금 삭감을 요구했고 시중은행에는 ‘임금을 반납해 일자리를 늘리라’고 독려했다. 금융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단체협상은 결렬됐지만 이후 은행별 노사는 결국 5% 안팎의 임금 삭감 및 반납에 합의했다. 신입행원 연봉은 20%나 깎였다.

올해도 정부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시중은행 임금 반납을 유도할 방침인 반면 금융노조는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치화 금융노조 정책홍보부장은 “노사 협상에 따라 결정되는 임금을 제3자인 정부가 나서서 깎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