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자 중 절반 자격미달
“월 86만원 버는데 신용등급 높다네요”
신용6등급 이상땐 미소금융 해당 안돼
상담으로 이어진 사람 20명중 1명꼴
“신용등급을 낮추고 싶어서 왔는데요….”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이지론 상담실을 찾은 서모 씨(45·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지론은 금융감독원이 후원하는 서민대출 중개업체로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대출을 소개하며 사전 심사를 대행한다.
서 씨는 “식당에서 일해 한 달에 86만 원을 버는데 남편 병원비와 아이들 학원비를 내다보니 형편이 빠듯하다”며 “김밥가게라도 해 보려고 하는데 소득이 낮아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고 신용등급이 4등급이다 보니 미소금융도 해당이 안 되더라”며 발을 굴렀다.
미소금융 신청 희망자 중 95%가량은 이처럼 신청 단계에서 탈락하거나 스스로 포기해 상담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자 20명 중 1명 정도만 상담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소금융이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무보증 서민소액대출)를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은 탓이다.
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한국이지론의 미소금융 신청자격 심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7∼24일 미소금융을 신청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 8240명 중 실제 상담으로 이어진 사례는 453명(5.5%)에 불과했다.
신청 희망자의 절반은 신용등급 등 기본조건이 안 맞아 신청도 할 수 없었다. 탈락 사유를 보면 1790명(21.7%)은 신용등급이 1∼6등급인 탓에 첫 단계에서 발길을 돌렸다. 미소금융은 신용등급이 7∼10등급이어야 신청할 수 있다. 이현돈 한국이지론 이사는 “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신용등급을 낮추는 것이 쉽기 때문에 신용등급을 내릴 방법을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는 카드를 단기간에 많이 발급받는 식의 편법으로 등급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등급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실제 상담까지는 갈 길이 멀다. 700명은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라서 자격이 없었다. 파산으로 면책을 받았거나 세금을 체납해 공공정보가 등록된 515명, 개인사업자가 아니어서 대상에서 제외된 483명 등을 빼면 신청 자격이 있는 이들은 4257명이었다.
자격은 되지만 좀 더 생각해보고 신청하겠다는 이들을 뺀 1793명은 실제로 미소금융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들 중 891명은 창업자금이 아니라 생활자금 용도로 대출을 받으려다 탈락했다. 또 빚이 많다는 이유로 242명,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135명이 탈락했다. 미소금융을 신청하려면 재산 대비 부채가 50% 이하여야 하고, 대도시의 경우 재산이 1억3500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 결국 상담까지 이어진 사람은 453명뿐이었지만 이들이 모두 대출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기자금을 50% 이상 확보하지 못한 창업자금 신청자와 사업 경력이 2년 미만인 운영자금 신청자는 돈을 빌릴 수 없다.
이 이사는 “미소금융 자격에 미달할 경우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저신용자에게 소액으로 대출해주는 희망홀씨대출 등 다른 대출을 신청하라고 안내하지만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어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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