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든 문화재든 기본이 중요
정부도 한옥 대중화 지원 위해 아파트처럼 단지 조성 해볼만”
우리나라 전통궁궐 건축을 대표하는 신응수 대목장이 2일 자신이 복원을 지휘한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감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 한옥 영빈관 건축에 참여한 신 대목장은 “정부가 먼저 기업과 손잡고 한옥 대중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올 상반기에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는 특별한 건물 한 채가 문을 연다. 전통한옥으로 지은 영빈관이다. 5개동 123평 규모의 한옥 영빈관은 지난해 말 본 건물 공사를 마치고 현재 실내 및 조경작업이 한창이다. 현대중공업을 방문하는 선주(船主) 등 해외 귀빈들이 이곳에서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우리나라 궁궐건축을 대표하는 신응수 대목장(68)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그는 광화문, 경복궁 복원 도편수(총지휘자)에 이어 지난해 12월 숭례문 복원 도편수로 선정된 전통건축 분야 최고의 장인(匠人)이다. 그런 그가 민간 기업의 외국손님 접대용 집짓기에 참여한 것은 뜻밖이다.
이달 초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기업이 최고 손님을 맞을 영빈관을 한옥으로 지을 생각을 한 것은 높이 살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런 기업이 흔치 않지요. 사실 이번 영빈관은 설계가 이미 나온 상태에서 일을 부탁받아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꼭 필요한 건물이라고 생각해 참여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것이든 문화재이든 한옥은 천년 앞을 보고 대대로 물려줄 수 있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대목장은 그런 면에서 국내 기업 중 삼성의 철저함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옆 한옥 ‘호암장’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승지원(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집무실)’ 건축 등을 맡은 바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한옥을 지을 때 항상 ‘어떤 나무가 제일 좋은가’부터 물었습니다. ‘자재’를 무엇보다 중요시했죠. 호암장은 이병철 창업주가 10년에 걸쳐 매년 영동지역에서 사 모은 한국 적송(赤松)으로만 지은 집입니다.”
신 대목장은 “이병철 창업주는 건축에 참여하는 막내 기술자까지 경력을 조사하고 실력을 파악해 뽑을 정도로 사람을 중요시했다”며 “그러나 한번 일을 맡긴 뒤에는 ‘어떻게 지어라’가 아니라 장인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존중했던 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이런 식으로 한옥 짓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수백 년이 지나도 이어질 전통과 국가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옥은 무조건 비싸고 불편하다는 인식을 바꾸는 게 첫째입니다. 외국에 한옥을 알리기에 앞서 당장 한국인부터가 평생에 한번 제대로 한옥을 경험하기 힘든 게 현실 아닌가요.”
신 대목장은 “한옥 대중화는 기업이 이런 일에 나서도록 정부가 권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한옥도 아파트처럼 단지를 조성해 분양하면 잘될 겁니다. 이제 우리 국가 수준이 그만큼 됐다고 봐요. 서울 근교에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체계적으로 지으면 건축비도 많이 들지 않고요, 내부를 현대식으로 하면 프리미엄 아파트 못잖게 편리합니다.”
그는 “(디자인 수도를 지향하는) 서울 한강변에도 정경이 좋은 고급 한옥 호텔을 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해외 건축가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보면 서양에서는 못 보는 우리 건축공법과 디자인에 깜짝 놀라고 신기해들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지낼 수 있는, 제대로 된 한옥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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