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원조 어그부츠는 왜 유사품에 밀렸을까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원조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모든 제품 생산기지 중국으로 이전
‘양가죽-양털 본고장 호주서 제조’ 포기
꼭 지켜야할 브랜드 정통성 버려

어그부츠(양털부츠)의 원조 브랜드로 꼽히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생산 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유사 브랜드에 밀리는
실책을 범했다. 핵심 공정만이라도 호주에 남겼더라면 원조 브랜드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DBR 자료 사진
어그부츠(양털부츠)의 원조 브랜드로 꼽히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생산 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유사 브랜드에 밀리는 실책을 범했다. 핵심 공정만이라도 호주에 남겼더라면 원조 브랜드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DBR 자료 사진

“무슨 이런 해괴망측한 신발이 있었나 싶었다. 날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았다.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균형미도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자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미국 뉴욕특파원을 지낸 한 기자의 블로그)

미국 뉴욕을 휩쓸었던 어그부츠의 열풍은 이번 겨울 한국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기습 한파와 폭설이 잇따르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어그부츠 수요가 급증했다. 국내에 판매되는 어그부츠 브랜드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UGG Australia)’와 ‘베어 파우(Bear Paw)’ ‘에뮤 오스트레일리아(Emu Australia)’ ‘반스(VANS)’ 등이 있다. 이 중 ‘원조 브랜드’는 단연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다.

그렇다면 이번 ‘어그부츠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원조 효과를 톡톡히 누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 백화점인 A백화점에서의 어그부츠 매출액은 90억 원(2009년 9월∼2010년 1월)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국 60여 곳에 매장이 있는 신발 체인인 ABC마트에서는 어그부츠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인터넷 쇼핑몰인 G마켓에서도 어그부츠 판매량이 109% 폭증했다.

그러나 A백화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베어 파우(50억 원)였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출액은 37억 원에 그쳤다. 원조가 유사 브랜드에 밀린 셈이다.

일반적으로 특정 브랜드가 일반명사화되면 해당 브랜드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실한 경쟁우위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혁신이나 변화를 처음 시도한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시장을 선점하고 개척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의류 브랜드가 트렌치코트를 내놓지만, 트렌치코트의 원조로 꼽히는 영국 버버리사(社) 제품이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브랜드에 대한 권한을 보호하지 않으면, 유사 브랜드에 시장을 잠식당하거나 브랜드 자체가 갖는 차별성을 잃을 수도 있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랜드 관리상 실책은 바로 유사 브랜드 혹은 짝퉁과의 충분한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진정성(authenticity)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부터 ‘양털의 산지’인 호주에서 본격 유행한 어그부츠의 원조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호주 출신의 브라이언 스미스가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어그 홀딩스’라는 회사를 세우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문제는 1995년 스미스가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데커스 아웃도어에 어그 홀딩스를 매각하면서 시작됐다. 데커스는 어그부츠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전 제품의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했다. 이는 다른 유사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핵심 정체성인 ‘메이드 인 오스트레일리아(Made in Australia)’를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털과 양가죽의 본고장인 호주에서 정통 어그부츠를 만든다’는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value)를 버린 셈이다.

심지어 데커스는 유사 브랜드들이 어그라는 브랜드를 쓰지 못하게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는 오히려 반발을 샀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실제 생산이 모두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에서 생산하는데도 가격은 호주에서 만들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고가정책을 유지했다는 점도 지적 받았다. 국내에서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제품은 30만 원대인 반면 유사 브랜드 제품은 대략 10만 원대이다. 데커스가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제조 공정의 일부만이라도 호주에 남겨뒀다면 브랜드 정통성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럭셔리 신발 브랜드인 ‘지미 추(Jimmy Choo)’와 협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 패션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지미 추와 같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다. 오히려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는 제조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풋프린트(footprint) 시스템 관리’와 같은 근본적인 브랜드 운영 전략이 절실하다. 제조의 모든 과정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고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서서히 높아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정민 PFIN 대표·mindy@pfin.co.kr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1호(2010년 2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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