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신한금융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라응찬 회장(72·사진)은 ‘신산(神算·신의 계산)’으로 불린다. 10원 단위까지 인수금액을 지시하는 치밀함으로 2006년 LG카드 인수에 성공한 후 붙여진 별명이다.
신한금융그룹이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을 눈앞에 두고 다시 한 번 라 회장의 리더십에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 금융권 최장수 CEO인 그는 지난달 26일 이사회에서 사실상 4번째 연임에 성공해 2013년까지 그룹을 이끌게 됐다.
라 회장의 연임은 우리금융 민영화와 외환은행 인수합병(M&A) 등 국내 은행권 재편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을 올해 안에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우리금융의 합병 대상으로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이 거론된다. 어느 쪽이든 우리금융과 합치면 자산규모에서 신한금융을 앞서게 된다. 국내 은행 인수에 관심이 없다며 일찌감치 발을 뺀 신한금융이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권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선 조흥은행과 LG카드의 성공적인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라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승부사 기질’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한금융 주주와 임직원들의 판단이다.
일부에선 라 회장의 연임으로 신한금융이 증권과 보험 등 비(非)은행 분야를 키우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는 2001년 신한금융 회장을 처음 맡았을 때도 은행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한 경쟁 금융그룹들과 달리 먼저 카드와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분야에 진출하는 ‘선(先)겸업화, 후(後)대형화’ 전략을 펼친 바 있다.
‘포스트 라응찬’ 시대를 준비하는 것도 라 회장의 몫이다. 체계적인 경영 승계 계획이 없다시피 한 국내 은행권에서 신한금융은 거의 유일하게 후계자를 육성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후보군을 경쟁하게 해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이백순 신한은행장’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 라응찬’의 1순위인 신 사장이 사장직을 맡은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아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선 후계자 수업이 더 필요하며, 이것이 라 회장의 4번째 연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신한금융 안팎의 평가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금융시장의 큰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라 회장이 그룹의 중심을 잡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 주주와 임직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며 “3년의 임기 중 안정적인 후계 승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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