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급격한 세계화에 ‘일그러진 도요타 공급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원가 절감만 지나치게 의식
해외 협력업체들 제어 누수

2004년 PC 1위 등극한 델
공급망 관리 실패 3위로 추

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은 ‘양날의 칼’로 불린다.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갖추면 기업이 흥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급망의 칼날에 베인 대표적 기업이 전대미문의 리콜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다. 도요타는 공급망 효율화를 통해 세계 최고 자동차업체의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과도한 글로벌 아웃소싱 과정에서 품질 관리에 실패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도요타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를 계기로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2호(2010년 3월 1일자)는 공급망관리(SCM)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최신 이론과 방법론을 소개했다. 주요 내용과 시사점을 간추린다.

○ 공급망 세계화의 득과 실…도요타차의 위기

전문가들은 도요타차 리콜 사태의 주 원인 중 하나로 생산과 부품 조달의 글로벌화를 꼽는다. 도요타차는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에 매년 470만∼480만 대를 생산하던 도요타차는 2000년부터 생산량을 늘려 2007년에는 853만 대를 생산해 미국 GM을 제치고 일약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했다. 1990년대 100만 대에도 훨씬 못 미치던 해외 생산량이 일본 내 생산물량을 초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급속한 세계화는 도요타차에 ‘세계 최고’ 타이틀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지나친 원가 절감 노력과 결합하며 도요타차의 ‘품질’을 훼손했다. 1995년 26개였던 도요타차의 해외 생산 공장은 2008년 말 총 52곳으로 정확히 두 배가 됐다. 문제는 급속한 공장 신설로 도요타차의 ‘린(lean) 생산 방식’을 제대로 토착화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해외 생산 차량에 들어갈 부품을 현지 조달했지만 거래업체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협력업체들에 대한 제어 능력에 누수가 생겼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과감하게 공급망 세계화를 밀어붙인 도요타차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고 말았다.

○ 공급망 진화와 적자생존…델 컴퓨터의 교훈


공급망 경영 분야의 신화적 기업으로 델 컴퓨터를 빼놓을 수 없다. 1984년 마이클 델이 자신의 대학 기숙사방에서 창립한 델은 창립 20주년인 2004년 세계 PC시장 1위에 등극했다. 고성장 비결은 ‘직접 판매모델(direct model)’로 불리는 공급망 전략 덕택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델의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2009년에는 급기야 3위로까지 밀려났다.

이에 대해 허대식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델의 공급망 전략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더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델은 기업과 정부 등 대규모 구매 고객에게 의존해 왔고, 이에 따라 공급망도 이 고객들 중심으로 구축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기업들은 정보기술(IT) 투자를 지속적으로 줄였다. 또 노트북PC, 심지어 넷북 같은 저가 노트북이 인기를 끌면서 PC시장에서 개인들의 수요가 훨씬 커졌다. 하지만 델은 기업 고객들의 구미에 맞게 데스크톱PC를 주로 생산했다. HP 등 경쟁업체들이 컴퓨터 조립을 아시아 업체들에 아웃소싱하며 트렌디한 디자인의 노트북을 재빨리 내놓았다. 하지만 델은 고성능 맞춤형 데스크톱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조립공장을 직접 소유하고 운영했다.

또 개인 소비자들은 직접 제품을 테스트해 본 후 구입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선호했다. 하지만 델은 오프라인 소매업체를 통한 거래를 하지 않았다. 결국 2007년 창업자 마이클 델 회장이 경영 일선으로 복귀해 공급망 전략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시장 변화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있다.

허 교수는 “시장은 계속 변한다”며 “이 변화에 발맞춰 공급망 전략과 공급망 구조도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 기업의 SCM 전략 수립을 위한 시사점

김정욱 액센츄어 파트너는 “과거의 SCM은 주로 원가 절감에 치중했지만 이제 공급망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해졌다”며 “수요 예측처럼 초기 공급망 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업들의 세계화 전략으로 생산 설비의 해외 이전과 글로벌 부품 조달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생산부서와 판매부서가 정기적인 협의채널을 가동해 적시 생산 및 배송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기술 및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연구개발(R&D) 관리 체계도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제품 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데다 기술 발전 속도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어떤 제품을 언제 개발하고 한정된 R&D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과 구매, 생산 조직은 물론이고 하청업체와의 협업 체계도 개선해야 한다.

또 도요타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 파트너는 “글로벌 생산 및 구매를 추진하는 기업들은 각 권역 및 국가별 특성과 정부 규제,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품질 관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 공급망 관리(SCM·Supply Chain Management)::
원자재 공급부터 최종 소비에 이르는 모든 프로세스와 그 과정에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해 가치를 창출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서로의 생산 정보와 판매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상품을 보충하는 ‘상호공동계획예측(CPFR·Collaborative Planning, Forecasting and Replenishment)’ 등이 최근 각광받는 SCM 기법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마트, 하이마트 등과 함께 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52호(2010년 3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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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Highlight/‘늙은 일본’ 경영에서 ‘젊은 한국’이 얻을 것
끝없이 이어지는 불황, 일본식 경영의 상징인 도요타의 위기, 국적 항공사 일본항공(JAL)의 침몰…. 합리주의와 성과주의에 기초한 서구식 경영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조명을 받았던 일본식 경영 모델이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식 경영은 안정된 환경에서 장기 성장을 추구할 때 적합하다. 일본식 경영을 도입한 기업이 단기 성장을 추구하거나 불안정한 환경에 노출됐다면 서구식 성과주의 요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식 경영의 위기를 진단하고 일본과 서구의 경영방식을 절묘하게 혼합한 ‘섞음의 미학’을 통해 독창적인 한국형 경영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 밖에 DBR는 △도요타 위기의 원인과 대책 △도요타의 위기관리 △일본항공 도산의 교훈 △급변하는 일본 유통업계를 분석한 네 가지 글도 함께 소개했다.

▼Risk Management/“돈을 갖고 튀어라?” 횡령사고 막는 네 가지 기술
작은 규모의 횡령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보이는 손실만 봐서는 안 된다. 이는 곧 수십억 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할 만한 허술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업 내 부정사건은 규모가 크건 작건, 외부로 공개됐건 안 됐건 간에 기업 가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기업 내 부정을 사전에 막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소개한다.

▼매킨지 쿼털리/물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의 승자
앞으로 20년간 세계 각 지역과 분야에서 물 생산성을 높여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500억∼6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수자원의 효율성은 기업 생존의 전제 조건이자 막대한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수자원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과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이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솔루션 발굴을 위한 마케팅 및 영업 역량 계발, 규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 전략 등을 집중 분석했다. 또 물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영업 및 마케팅 전략과 규제 대응 방안 등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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