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행동경제학과 세종시

  • Array
  • 입력 2010년 3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세종시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간이 지나도 충청지역에서 정부 수정안에 대한 지지가 크게 높아지지 않고 있다.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왜 충청도민은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수정안이 원안보다 자족도시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지역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이 분석이 옳다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 주류 경제학은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지 않은 충청의 여론을 설명할 수 없다.

반면 인간을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춤추는 존재’로 보는 행동경제학의 설명을 빌리면 이해되는 대목이 많다. 우선 충청도민들은 정부의 수정안 추진을 ‘공정성(fairness)의 파괴’로 보는 것 같다. 사람들은 판단이나 거래를 할 때 ‘이익이냐 손해냐’만을 따지지 않고 거래의 상황이나 맥락까지 파악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런 성향을 행동경제학은 ‘공정성 추구’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두 친구가 길을 가다 한 명이 10만 원을 발견했다고 치자. 발견자가 친구에게 “행운을 나눠 갖자”며 1만 원을 준다면 컴퓨터는 무조건 그 거래를 받아들인다. 얼마를 받든 간에 불로소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르다. 친구는 “너나 다 가져라”라고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자”고 할 수 있다. 거래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경찰 신고는 도덕성이 아니라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방을 처벌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충청도민들은 수정안에 대해 ‘정부가 자꾸 약속을 어기고 있으며, 그것도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언제 수도를 옮겨 달라고 했냐” “농락당한 느낌”이라는 발언이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정부는 ‘무엇이 더 나은 안인가’라는 이성적 판단을 강권하기에 앞서 충청인의 마음을 달랬어야 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현지에 가 이해를 구하는 절차로 ‘첫수’를 뒀어야 했다. 또 충청도민이 이 분노를 표출하도록 놔두고 대통령은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어야 했다. 진심이 담긴 감동적인 연설이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충청인의 민심에는 ‘보유 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 결과 인간은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떡 두 개보다 손 안에 있는 떡 한 개를 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아가 상대방이 약속을 뒤집은 전력이 있다면 ‘지금 가진 떡 한 개(원안)라도 지키는 것이 낫다’는 선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당은 충청에서 6월 지방선거 패배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세종시 수정안을 본격 논의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느꼈을 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면 이성적 판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억누르면 더 감정적인 판단을 하기 쉽다.

더욱이 선거 후에도 세종시 문제가 계속 표류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원안이냐, 수정안이냐’가 아니라 ‘표류냐, 타협이냐’로 프레임(틀) 자체가 변질된다. 이렇게 되면 충청도민이 타협을 고려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행동경제학적 분석도 만능은 아니어서 꼭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