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0을 기록하는 폭등세를 보이다가 몇 년 후 500 아래로 폭락했던 1990년대에 증권가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다. 주가가 연일 급등하던 1989년 전후에 증권사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액면가 언저리의 싼 가격에 받아놓고 있었는데 주가는 10배 이상 올랐다. 우리사주를 매각하면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증권사 총각들의 인기는 덩달아 치솟아 ‘마담뚜’의 명단 상위권을 차지했고 좋은 맞선 자리가 많이 들어와 장가도 잘 갔다.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상황이 급변했다. 3년 정도 후에 주가가 폭락하자 증권사 총각들의 인기가 형편없이 떨어져 결혼은커녕 맞선조차 보기 힘들었다. 어느 증권사 총각이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것을 숨기고 맞선을 봤는데 상대방 여성이 직업이 뭐냐고 묻자 이 총각, “이름 없는 조그만 제조업체에 다닌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작은 회사면 어때요. 증권회사만 아니면 되지요!”라고 대답했다. 이 총각이 그 여성과 결혼에 성공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에 미혼 남녀들이 여러 번 만나보면서 상대를 가늠하듯 주식을 매매할 때도 사전조사작업이 필요하다. 주식을 사려는 회사가 어떤 회사이며, 최근 영업실적은 어떤지, 주가가 오를 만한 재료가 있는지 등을 파악한 뒤 매입 결정을 해야 한다. 사전에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성급한 결혼이 실패하기 쉽듯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성급한 주식매매 역시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 결혼과 주식투자의 공통점이라면 큰 차이점도 있다. 요즘은 이혼율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일단 결혼을 하면 다소의 성격 차이나 불협화음이 있어도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며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훨씬 많다. 그러나 이와 달리 주식 투자에서는 한 회사의 주식과 영원히 동고동락해서는 안 된다.
주식을 한 번 사면 여간해서는 팔지 않는 투자자들도 있고 자신이 매입한 주식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을 한 나머지 환상을 품고 그 주식을 대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물론 우량 종목에 장기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초우량 성장주들에 해당하는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주식은 상승과정이 전개된 뒤에는 주식시장의 장세 흐름이 바뀌면서 하락과정을 겪는다고 봐야 한다.
주식 투자에서 그때그때 시장을 선도하는 ‘주도주’ 종목군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주도주는 한동안 다른 주식에 비해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주도주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2007년에는 전반적으로 주식시장이 좋아 많은 종목의 주가가 올랐지만 특히 조선업종이 주도주였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기의 호황과 함께 투기자본이 몰리면서 해운경기가 과열 양상까지 보였고 선박 수주는 수년 치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오자 투기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해운경기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인 발틱운임지수(BDI)가 폭락했으며 선박 주문이 속속 취소됐다. 당연히 조선업종의 주가는 크게 떨어졌고 주도주에서 멀어졌다.
그 후 각국의 공조 속에 돈이 풀리고 경기가 회복되자 반도체와 자동차업종이 회복세를 보이며 주도주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과 자동차 업체는 금융위기 속에서 다른 나라의 경쟁업체들이 쓰러져 나가자 오히려 반사이익을 보게 됐고 주가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듯 큰 위기를 한 번 겪으면 경제의 흐름이나 산업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주식시장의 주도주 역시 손바뀜을 겪는 때가 많다. 그러므로 투자자들은 자신의 보유종목이 주도주의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미련을 갖지 말고 팔아버린 뒤에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새롭게 떠오르는 주도주를 잡아야 투자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한 번 사랑했던 주식이 더는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라면 냉정하게 차버리고 새 주식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주식시장에서의 사랑의 법칙이다.
댓글 0